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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부동산·가계부채 문제와 금리인상..그리고 한은 총재 청문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부동산 버블로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통화정책은 부동산 문제뿐 아니라 경기, 물가, 금융안정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21일 한은 총재 연임과 관련한 청문회를 앞두고 이같은 서면답변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각에선 늘어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때문에 금리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 총재는 통화정책은 '모든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최근 수년간 부동산 호황과 함께 가계부채가 급증한 바 있지만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다. 총재는 당장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에 큰 흠집을 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는 정부의 주택시장 및 가계부채 대책 등에 힘입어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7년 가계부채(가계신용 기준) 증가율은 8.1%로 2015년 10.9%, 2016년 11.6%에 비해 3%p 내외로 하락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 해 8월 2일과 10월 24일에 주택시장 및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당장 금융 시스템을 건드리는 위험요인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가 상환능력이 높은 계층에 집중돼 있고 금융기관의 복원력도 양호한 점에 비춰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중 고소득(상위 30%) 차주 비중이 65.5%, 고신용(신용등급 1~3등급) 차주 비중이 65.7%(2017년 9월말)를 차지한다. 2017년말 현재 국내은행의 BIS 총자본비율은 15.2%로 양호한 상태다.

총재는 다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총량 수준이 이미 높은 데다 증가 속도도 소득에 비해 여전히 빨라 민간소비를 제약하고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잠재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면서 "또한 향후 시장금리 상승시 취약차주의 채무상환 어려움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율이 점진적으로 낮아질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가되 시장금리 상승, 주택시장 변동성 확대 등에 따른 리스크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부동산·가계부채 문제와 금리인상..그리고 한은 총재 청문회
자료=한국은행

■ 총재 "금리 올리면 부동산 가격안정에 도움될 것이나 정부 정책효과 감안해서"
이 총재는 금리를 추가적으로 올리면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다만 통화정책이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상 이 부분만 보고 움직이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보다 긴축적으로 운영할 경우 일부 과열지역의 주택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는 등의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통화정책은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주택가격 상승에 대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경우 고용, 소비 등 실물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고 했다.

향후 금리인상이 가져올 부동산 시장 제어 효과와 함께 소비 감소 등 경기에 미칠 다른 악영향도 감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과 가계대출 규제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이를 지켜볼 필요성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정부의 부동산 및 대출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향후 부동산 가격 움직임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올해 정부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1월), 新DTI 도입(1월), 중도금대출 보증한도 하향조정(6억→5억) 및 보증비율 축소(90→80%, 1월)에 이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3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4월) 등을 시행한다.

올해엔 1월 31일 시행에 들어간 新DTI와 함께 대출금리 상승압력 등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더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예상이다. 또 오는 10월로 예정된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 등 추가 대책의 영향으로 둔화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 DSR은 1년 동안 갚아야 하는 모든 종류의 부채 원리금을 연소득으로 나눈 것으로, 주택담보대출액의 원리금 상환액만 따진 新DTI보다 범위가 넓다.

정부는 이밖에 자영업자대출 규제를 위해 LTI(Loan to income ratio, 소득대비대출비율), 임대사업자 규제를 위해 RTI(Rent to intersest rat, 임대업이자상환비율) 카드까지 꺼내든 상태다.

이 총재는 "정부 정책을 지켜볼 필요가 있겠으나 가계부채 총량수준이 이미 높은 점에 비춰 가계부채 증가율을 가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 이내로 관리해 나가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 총재 "저금리 장기화가 부동산·가계부채에 영향 줘..저금리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
이 총재도 오랜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가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가계부채를 키웠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컸다고 본다.

이 총재는 "그동안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가계부채 증가, 주택가격 상승 등 금융안정 측면에서의 리스크가 확대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최경환 전 부총리 시대(2014년7월~2016년1월)의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와 같은 정부 정책과 함께 통화완화가 부동산·가계부채 문제를 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그러나 당시 경제상황을 돌이켜 보면, 국내 경제는 세월호 사고(14년 4월), 메르스 사태(15년 5월) 등으로 경제심리가 위축되고 성장세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밑도는 등 부진이 심화돼 금리를 계속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수요 위축, 국제유가 급락 등으로 0%대까지 하락하자 일각에선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즉 경기 및 물가의 하방위험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는 경기회복 모멘텀을 살리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저금리 기조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특히 "당시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다면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은이 2014년 8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저성장·저물가 상황에서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살리고자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에 걸쳐 인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이같은 정책운영이 우리 경제의 견실한 회복세에 기여했다는 게 이 총재의 관점이다.

한은은 금리인하와 함께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현재 25조원)를 지난 4년간 13조원 증액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도 했다. 이후 작년 11월 6년 5개월만에 금리를 올렸다.

■ 가계부채와 부동산, 그리고 낮아지는 잠재성장률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부동산·가계부채 문제와 금리인상..그리고 한은 총재 청문회
자료=한국은행


당장 가계부채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계부채는 이미 한국의 소비를 제약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 한국은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빚 갚는 데 많은 돈을 써야 하니 소비 등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높은 집값 등으로 출산율이 낮아진지 오래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기 힘든 국가가 됐다.

젊은층이 구직란과 함께 높은 집값 등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건전한 노동보다는 임대사업 등으로 뛰어드는 20대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30세 미만 부동산임대업 신규 사업자(2009년 2932명 → 2016년 7065명) 및 이 사업자 중 30세 미만이 차지하는 비중(2009년 23.4% → 2016년 38.0%)이 크게 증가했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괜찮은 일자리가 많지 않은 데다 부유한 부모의 증여가 늘어난 것 역시 젊은 임대사업자 비중을 늘린 요인이다.

한국경제는 좀 길게 보면 급격한 인구고령화와 '초'저출산이 맞물려 잠재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등 동원 가능한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당장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잠재성장률 하락을 제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잠재성장률과 관련해선 기술 발전, 그리고 안정적인 사회 구조가 중요하다. 하지만 1990년대말 IMF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출산율은 위험수위로 떨어진 뒤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향후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내외에서 2016~2020년 중 2%대 후반으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인구고령화의 급격한 진행 및 저출산 등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잠재성장률이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2018년 고령사회(65세이상 인구 비중 14%이상),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이상 인구 비중 20%이상)로 진입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은은 생산가능인구가 지난해 0.7만명 감소에 이어 올해 4.6만명, 내년 6.8만명 줄어들 것으로 봤다. 2020년엔 감소규모가 24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해결책은 사회·경제적 구조개선 노력을 적극적으로 병행하는 수밖에 없다. 늦었지만 저출산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 동안은 인구가 성장률에 그다지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 않았지만, 길게 보면 상당히 위험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4.8~5.2%, 2006~2010년 3.7~3.9%, 2011~2015년 3.0~3.4%였다. 2016~2020년은 2.8~2.9% 수준으로 추정된다.

생산성과 자본, 노동 등의 기여도가 모두 낮아지는 추세다.

생산성의 기여도는 2001~2005년 1.9%포인트 수준에서 다음 5년엔 1.3%포인트로, 이후엔 각각 0.9%포인트, 0.7%포인트로 낮아진 것으로 추정됐다.

자본의 기여도는 2.2%포인트에서 1.8%포인트, 이후 1.6%포인트와 1.4%포인트로 낮아진 것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노동의 기여도는 2000년대 초 0.9% 수준에서 이후 5년 동안엔 0.6%포인트로 낮아진 것으로 봤다. 이후 2011~2015년엔 기여도가 0.9%포인트로 올라온 뒤 2016~2020년엔 0.7%포인트로 하락할 것으로 관측했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매니저는 "한국은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됐다"면서 "당장 최근은 글로벌 경기 회복세 덕분에 경기가 좋아졌지만, 부동산 문제 등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길게 보면 고성장이 불가능한 구조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까지 경기가 안 좋아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지만 자금이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곳으로 많이 갔다"면서 "덕분에 젊은층이 더욱 희망을 잃었고 신생아수는 이제 40만명도 되지 않는다. 미래 한국경제의 희망은 사그라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부동산·가계부채 문제와 금리인상..그리고 한은 총재 청문회
자료=한국은행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