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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해외 대기획 3탄]정부 가격통제에 공장 줄파산…빵 하나 사려고 6시간씩 줄서

[포퓰리즘의 비극 중남미를 가다]<2> 베네수엘라-정부 개입에 고통받는 서민
볼리바르 폭락에 수입도 못해 마트 식품코너 텅빈 지 오래
빵집 약탈 막으려 경호원도 먹고살기 위해 이민길 올라

[fn 해외 대기획 3탄]정부 가격통제에 공장 줄파산…빵 하나 사려고 6시간씩 줄서
지난 26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소재 대형 슈퍼마켓 '엑셀시오 가마'의 텅 비어있는 진열대를 현지인이 바라보고 있다. 정부의 가격 통제로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자 시장에 공급되는 물건이 사라진 셈이다. 사진=김문희 기자

[fn 해외 대기획 3탄]정부 가격통제에 공장 줄파산…빵 하나 사려고 6시간씩 줄서
지난 26일 오전 11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소재 한 빵집 앞에 빵을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다. 이들은 오전 6시부터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고 말했다. 사진=김문희 기자

【 카라카스(베네수엘라)=김문희 김유아 기자】 "사는게 사는게 아니예요. 안 죽으려고 버티는 서바이벌이지."
지난 26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소재 대형 슈퍼마켓 엑셀시오 가마의 풍경은 흡사 내일 당장 폐업정리를 할 것만 같았다. 냉기가 사라진지 오래된 불 꺼진 텅 빈 냉장고와 진열대에는 들여온지 며칠이 지난지 알 수 없는 채소들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최근 몇 년 새 초(超)인플레이션을 뜻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은 '원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정부가 통제한 가격에 손해보며 장사할 수 없다'며 공장 가동일을 대폭 줄이거나 결국 파산신청을 내버렸다. 미국 달러화 대비 볼리바르화의 폭락으로 수입품도 사라진 가운데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갔다.

시내 마트들 '개점휴업'

이날 엑셀시오 가마 마트뿐만 아니라 카라카스에 있는 여러 마트는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빈 바구니를 들고 진열대 사이를 오가는 몇 안 되는 손님과 텅 빈 냉장고를 바라보는 마트 직원들이 전부였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오전 장을 보러 나선 호세피나 브라보씨(58.여)는 "장을 보러 마트에 올 때마다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우리를 잡아먹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고 있는 상황에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육코너도 텅 비어 있었다. 마트 내 정육담당 헤수스 몰리나씨(48)는 "고기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건 기억도 안 난다"며 손사래 쳤다. "마지막으로 고기가 들어온 건 작년 8월로 기억한다. 마트 체인 안에서 유통되는 고기가 있긴 하지만 가격통제가 심해져서 그 고기조차도 본사에서 거의 풀지 않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통제된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더라도 공급량이 너무 적어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품목도 있었다. 이날 오전 마트에 들어온 식빵 200봉지는 마트가 문을 연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동이 났다.

마트 직원 예시스 고메스씨(46.여)는 "마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품목은 설탕, 강냉이 가루, 국수, 빵, 밀가루 등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 식료품들이 잘 나간다"면서 "비누나 데오드란트는 가격이 너무 비싸 판매되지 않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나온 시즌 쿠키도 3개월이 되도록 안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일부 식료품은 가격을 통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매주 가격이 오르고 있어 최저임금과 음식 바우처로 한 달을 버티는 이들에겐 앞으로 식빵 구경하는 것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고 마트 관계자는 말했다.

이와 반대로 샴푸, 칫솔, 코카콜라, 환타 같은 수입품은 빽빽이 채워져 있었지만 누구도 손대지 않았다. 너무 비싸서다. 이날 진열된 환타 1병(2L) 가격은 14만5911볼리바르로, 현재 최저임금(130만7646볼리바르) 기준 약 10분의 1이었다. 임금의 10분의 1 이상을 내야 살 수 있는 양초, 세제용품 등이 늘어져 있던 진열대에는 그 누구도 기웃거리지 않았다.

빵 사기 위해 줄서기는 기본

같은 날 오전 11시. 카라카스 시내 한 빵집 앞에 50m가 넘는 긴 줄이 늘어섰다. 빵집 문은 철창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시민들은 초췌한 얼굴로 하염없이 빵집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빵집 주인은 "정오부터 빵을 판매할 예정"이라면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전 6시에 줄서기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났다는 마리나 카르멘씨(65.여)는 "선착순으로 빵을 판매하고, 일찍 오지 않으면 그마저도 구할 수 없는데 그 시간에 와도 15번째였다"면서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해 그나마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게 빵이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딸을 비롯해 주변 가족 모두 해외로 이민을 갔지만, 지체장애를 지닌 장성한 아들이 있어 어떻게든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쓰레기차가 오면 몰려들어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이 일상이 됐지만 도리가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빵집 주인 마리오 브리세뇨씨(58)는 하루에 빵을 800개만 생산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빵 생산량을 감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30~40분만 지나면 금세 동이 나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정부가 생산과 공급을 통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해당 빵집도 본래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하던 전 주인이 가격통제와 판매량 제한 등으로 정부가 개입하자 빵집을 현재 주인에게 넘기고 다른 나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교민 전모씨는 "마트에서 우유, 계란 등 식료품 구하기는 더욱더 어려워지고, 이처럼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니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면서 "현재 카라카스 소재 유일한 한식당도 직원들이 모두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 문을 닫은 상태"라고 말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김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