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포트라이트 일상 속 갑질]

‘태움’도 버거운데 환자·의사까지… 병원은 갑질공화국?

<4> ‘삼중고’에 우는 간호사
환자의 진상.. 커피 심부름에 욕설·폭행, 신체접촉 등 성추행도 빈번
의사의 횡포.. 권력 앞세워 무시·비하 일쑤, 의무기록 악의적 기재 협박
유명무실 매뉴얼.. 환자 최우선이라며 쉬쉬, 고발·상담 기구 법제화 필요

지난 3월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성내천 육교에서 간호사연대 MBT 주최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간호사로 일하면서 힘들었던 경험을 적은 포스트잇을 선보이고 있다.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괴롭히는 간호계 태움 문화는 수차례 공론화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태움 못지않게 간호사들에게 정신적 괴롭힘을 주는 것이 바로 환자와 의사의 갑질 행위다. 한 간호사는 "병원 내 갑질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갑질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토로했다.

■환자 욕설.폭행에 의사도 갑질

"진통제 빨리 안줘? 야이 XX"
간호사 김지영씨(가명)는 처방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 환자로부터 약이 늦게 나온다며 이런 욕설과 고성을 들어야 했다. 김씨는 환자들로부터 욕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 마음에 굳은 살이 박일 법도 하지만 늘 괴롭기만 하다. 아기에게 주사를 놓으려 하면 "한번에 못하면 이 언니 한 대 때리자"고 막말을 내뱉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과일을 깎아달라거나 커피 주문 등 떼를 쓰는 환자들도 더러 있다. 심한 경우 간호사에게 발길질하고 따귀를 때리거나 침을 뱉고 병원비가 비싸다며 난동을 부리는 환자 때문에 병원 보안팀이 출동하는 일도 벌어진다.

여기에 간호사들은 수시로 환자의 성희롱, 성추행에도 노출되고 있다. 환자들이 "다리가 섹시하네" "엉덩이 크니까 아기 잘 낳겠다"며 간호사의 외모 품평을 한다거나 "내가 좀만 젊었으면 당신 같은 여자랑 꼭 잤을 거다" "퇴근 언제 하냐, 병원 앞에서 기다리겠다" 같은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하의를 내린 상태에서 이불을 젖히게 하거나 혈압 잴 때 의도적으로 팔을 높이 들어 간호사 가슴에 닿게 하거나 허리를 감싸는 환자들도 있다는 전언이다.

이런 진상 환자들 못지않게 애태우게 하는 이들이 갑질하는 의사라고 간호사들은 입을 모은다. 간호사가 약 처방이 잘못됐다고 알리거나 불필요한 검사, 처치 등에 대해 얘기하면 의사는 "오더 대로 하세요!"라고 윽박지르거나 화내는 경우가 많고 대리처방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기구를 빨리 안 준다 싶으면 "이 잡것들이" 같은 막말과 욕설을 내뱉는 의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간호사는 "의사가 환자 의무기록에 간호사에 대해 악의적으로 작성해 간호사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펜을 간호사 협박용으로 쓰는 것"이라며 "의무기록이 의사들 일기장도 아니지 않나. 간호사는 의무기록을 작성할 권한이 없어 억울해도 그냥 가슴앓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병원 지침 없거나 유명무실…대책 절실

전문가들은 태움 문제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이 환자나 의사로부터 갑질을 당할 경우 이에 대응하는 지침이 없다고 지적했다. 매뉴얼이 있다 하더라도 사실상 유명무실하고 관리자들조차 이를 모를 때가 많아 간호사들이 곤경에 처할 때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한림대 간호학부 강경화 교수는 "병원 내 문제의 원인은 여러가지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면 위계적인 문화, 아주 오래된 젠더권력을 꼽을 수 있다"며 "조직 문화를 바꾸려면 운영하는 경영진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가 생기면 이를 고발 또는 상담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하고 해당 기구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는 그런 시스템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병원 내 시스템 구축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유지인 조직부장은 "폭언, 폭행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병원에서 이를 확실히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며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환자가 최우선이라며 쉬쉬하거나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해결 절차도 제대로 안 갖춰져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갑질 환자에 대한 예방은 쉽지 않은 만큼 최소한 사내 간호사, 의사를 대상으로 지금보다 실질적인 성희롱 예방교육과 인권교육이 절실하다. 정부가 이를 뒷받침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준형 팀장 구자윤 김규태 이진혁 최용준 김유아 기자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