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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KDI도 거든 최저임금 속도조절론

국책硏도 비판 대열 가세.. 청와대 고집부릴 때 아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저임금 인상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냈다. 최경수 선임연구위원은 4일 발간된 KDI포커스에 실린 보고서에서 내년에 최저임금을 15% 올리면 9만6000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내후년에도 같은 비율로 올리면 고용 감소폭이 14만4000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원 달성'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놓은 공약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여기에 우려를 나타내는 보고서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오죽하면 국책연구기관이 이런 보고서를 냈는지 돌아봐야 한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반복되면 고용 감소폭이 커지고 임금질서가 교란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임금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0.5(이하 2016년 기준)로 미국(0.35), 일본(0.4), 독일(0.47), 영국(0.49)보다 높다. 선진국 중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프랑스(0.61)가 거의 유일하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3일 '가구' 단위로 집계되는 통계청의 가계소득 통계를 '개인' 단위로 바꿔 새로 집계한 통계를 공개했다. 새 통계에 따르면 소득 10분위 중 최하위인 1분위만 전년 대비 소득증가율이 낮아지고 2~10분위는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 그러나 새 통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줄거나 임금이 0원으로 바뀐 자영업자와 실직자를 빼고 임금이 오른 사람만 놓고 다시 집계한 것이어서 통계왜곡의 소지가 있다.

청와대 수석이 통계청의 공식 통계를 제쳐두고 흠결 있는 통계를 따로 만들어 거기에 의존해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은 우려스럽다. 이 정도까지 가면 소득주도성장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유 없이 대통령이 공약한 사업을 늦추자고 하겠는가.

홍 수석은 3일 발표한 통계가 스스로도 무리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임금인상 속도를 1~2년 늦춘다고 해서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자의 일자리를 지키면서 소득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구간이 있다. 그 범위 이내로 인상률을 낮추는 것이 소득주도성장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