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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레저]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다..중세를 간직한 도시, 베라트

발칸반도위 '또 하나의 유럽' 알바니아 여행
'1000개의 창문'으로 유명한 도시 베라트엔 오스만 양식 그대로 살아있어
18세기 교역도시 티라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성장… 해안도시 두러스 가면 로마시대 원형극장이 눈앞에

[yes+ 레저]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다..중세를 간직한 도시, 베라트

【 티라나(알바니아)=조용철 기자】 동쪽으로 마케도니아와 코소보,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알바니아. 비교적 동서 구간은 짧고 남북간 길이가 340㎞에 이르는 길쭉한 나라로 얼마 되지 않는 평야를 제외하면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다.

국토의 77%가 산악 또는 구릉지역인 탓에 농사보다는 임업과 목축업 등이 발달했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 이상으로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대다수는 산자락 조그만 땅에 농사를 짓거나 양을 키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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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중심부에 있는 스칸데르베그 광장과 역사박물관 사진=조용철 기자


가게나 길거리에서 여행객을 향해 미소짓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아마도 마피아가 득실댄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고 실아가기 때문일 것이다.알바니아는 프랑스처럼 고급스런 휴양지나 이탈리아처럼 높은 첨탑을 보유한 유명한 성당도 딱히 없다. 유럽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는 수천년간 발칸반도 열강들에게 시달렸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옛 소련, 중국 등과 교류하면서 폐쇄적인 정책을 이어갔지만 1990년대 초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등 변화를 겪은 뒤 현재 개방적인 국가로 바뀌고 있다. 여전히 도시 곳곳에 40여년간 지속된 최악의 사회주의 독재정권의 흔적이 남아있다. 발칸반도 내의 '또 하나의 유럽'으로 꼽히는 알바니아는 아픔을 뒤로 한 채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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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트성 안에 거주하는 현지 주민 사진=조용철 기자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 베라트

수도 티라나에서 남쪽으로 120㎞가량 가다보면 세만강이 나온다. 세만강 주변으로 조용하고 고풍스런 마을 베라트와 만난다. 인구가 수만명에 불과한 조용한 시골 마을이지만 세만강이 마을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산 밑으로 계단식 가옥들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시끌벅적한 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을 바라보고 있으면 옛날엔 번성했던 도시였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베라트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 의상, 전통 그리고 전망이 합쳐지면서 훌륭한 조합을 이룬다. 이른바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로 유명한 베라트는 오스만 시대의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산 밑으로 오래된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강을 향해 있는 네모난 창문들이 많다. 다리에서 바라보면 정말로 흰 집들의 창문이 모두 강쪽으로 향하고 있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마치 창문들이 사람 눈처럼 강 아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베라트는 고대 성채와 모스크, 성당 등 옛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박물관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특히 베라트 성에 있는 오누프리 박물관에는 걸작으로 꼽히는 중세의 도상(圖像)이 보관돼 있다. 성채 안에는 독특하게도 오늘날까지 주민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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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트성 내 오누프리 박물관 사진=조용철 기자


■알바니아 정치·경제의 중심지, 티라나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는 1614년 슐레이만 파샤가 이 지역에 인구집중을 위해 사원과 대중 목욕탕 등의 기반시설을 갖추면서 도시로 건설됐다. 18세기 티라나는 실크·면직물·가죽·도자기·은그릇 등으로 유명한 교역도시로 발전했다. 첫 발칸전쟁이 발생한 1912년 일시적으로 세르비아 군대에 점령당했으며, 1930~1944년에 티라나 시민들은 나치와 파시스트에 대항해 싸웠다고 한다. 오늘날 티라나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스칸데르베그 광장을 찾았다. 티라나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티라나 관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역사박물관 앞이다. 역사박물관 정면의 민중항쟁 그림이 유명하다. 1981년 문을 연 역사박물관은 고대관, 중세관, 르네상스관, 독립관, 이콘관, 독재로부터 자유화의 관, 공산주의 테러관, 테레사 수녀관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의 규모가 엄청나고 시내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알바니아를 찾은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둘러봐야 할 곳이다. 광장 정면에는 15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알바니아를 최초로 독립시킨 국민적 영웅 스칸데르베그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스칸데르베그 광장을 지나서 만난 시계탑은 지난 1822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광장 동쪽에는 무노하관이 있다. 1960년 러시아에 의해 건설된 이 문화관에선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yes+ 레저]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다..중세를 간직한 도시, 베라트
두러스 해변공원 사진=조용철 기자

[yes+ 레저]카페도 네온사인도 없다..중세를 간직한 도시, 베라트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로 유명한 베라트 사진=조용철 기자


■3000년의 역사를 품은 두러스

알바니아는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를 따라 약 450㎞에 달하는 해안을 가지고 있다. 티라나에서 서쪽으로 불과 39㎞ 가면 알바니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 도시인 두러스와 만난다. 아드리아해는 물이 얕고 모래가 많아 가족 휴가지로 적합하다고 한다. 아드리아해와 접해있는 두러스의 해변은 알바니아에서 가장 크고 자주 이용하는 해변이다. 두러스 해변은 길이가 6㎞에 이르고 상당히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서해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그리 많지 않아 가족과 아이들이 매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두러스에는 3개의 주요 해변이 있다. 두러스 북쪽에 있는 쿠리야 해변은 다른 2개의 해변에 비해 더 깊다. 두러스 남쪽에는 나머지 두 개의 다른 해변이 있다.

두러스는 거의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알바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그만큼 고대 고고학 유적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두러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관광명소는 발칸반도에서 두번째로 큰 로마시대 원형극장이다. 비록 허물어지고 제대로 복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 만큼은 엄청나다.

yccho@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