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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국민연금 투자 수익과 무관한 정부의 경영간섭 우려 높아

스튜어드십코드 문제 없나
"사회적 여론 형성때 의결" 복지부장관 발언 파장.. 학계 "마녀사냥 될수도"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세부적으로 만들어야 경영간섭 오해 풀수 있어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국민연금 투자 수익과 무관한 정부의 경영간섭 우려 높아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 강화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키로 했다. 세간의 우려를 감안해 경영 참여는 원칙적으로 배제됐지만 기금운용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임원의 선임.해임, 합병.분할 등 '제한적인' 경영 참여를 허용했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수익성을 높이려 투자 기업에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관치를 우려한다. 지난 정부 때 국민연금이 정권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을 봤기 때문이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실무를 맡아야 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이탈이 가속화하는 점도 시행에 걸림돌이다.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필요

국민(가입자) 입장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이는데 필요하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수익률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이를 도입해야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국

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7%를 차지하고 있다. 지분을 5% 이상 가진 기업만 300개나 된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30일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업 경영가치 훼손으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됐을 때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하면 (경영 참여가)가능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해 우려가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여론'을 언급한 것은 결국 정부의 입맛대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기업 경영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면 국민연금이 간섭할 수 있는 사례를 세부적으로 밝혀둬야 한다. 그래야 경영 간섭이라는 오해를 풀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와 관련해 별도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셈이다.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9명)를 전문가 중심의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14명)로 확대 개편하는 내용도 담겼지만 이 역시 친정부적일 수밖에 없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을 추천받아 위촉하는 형태라면 결국 정부 편향 인사 위주로 꾸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의 성과를 주식과 무관한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특정 기업에 대한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며 "구체적 기준 없이 여론이 들끓으면 경영에 간섭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 '제코가 석자'

모든 의결권 관련 사안은 1차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검토한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는 지금 '제 코가 석자'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는데 실제적 책임을 져야 할 기금운용본부장(CIO)은 1년이 넘도록 공석이고, 그 아래 주요 실장 자리도 여럿이 비었다. 기업 투자를 맡는 운용역의 이탈은 더욱 심각하다.

사람이 떠나니 수익률은 초라하다. 지난해 수익률은 7.3%였지만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수익률은 0.50%로 하락했다. 연간 수익률로 따지면 1.16%에 불과하다. 특히 국내 주식투자 부문에선 지난 5월까지가 3조원 넘는 손실을 봤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기업의 경영 활동이 '심각한 경영가치 훼손'에 해당하는지, 국민연금의 개입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지 제대로 분석하기가 만무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유재중 의원(자유한국당)은 "국민연금의 올해 신규 국내주식 투자금액 1조7350억원을 포함하면 손실금액은 3조1060억원에 달한다"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 넘게 장기 공석이고, 정원 대비 30명 넘게 부족한 기금운용직 공백 사태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10%룰' 두고 부처 간 이견

이뿐 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려면 자본시장법의 '5%룰'과 '10%룰'을 손봐야 한다. 하지만 부처 간에 견해가 다르다. 5%룰은 상장기업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가 지분 1% 이상을 사고팔 때 5영업일 이내에 공시토록 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5%룰을 완화해 공적 연기금은 주식 보유 목적과 관계없이 약식 보고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6개월 간의 단기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하는 10%룰이다. 10%룰은 펀드 등 주요주주가 경영참여 공시를 통해 주가를 띄웠다가 단기간에 차익을 내고 먹튀하는 일이 없게끔 만든 규제다. 복지부는 단기매매차익 반환에 예외를 인정하는 특례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10%룰 완화에 대해 신중하다. 이를 국민연금에 한해서만 완화하는 것은 일반 투자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CIO는 "국민연금은 워렌 버핏처럼 망하지 않을 회사에 영원히 투자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문제가 많은 기업에 투자하면서 헛심을 쓸게 아니라 아예 지분을 정리하고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쓴소리를 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자본시장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