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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안전이다] 美·日 등 선진국은 기술사 권한·책임 막중

(中) '글로벌 스탠다드' 기술사 자격제도 필요
韓, 기술사 검정시험 안봐도 경력만으로 동일 지위 인정
현행법상 설계도서 제작시 기술사 아니어도 상관없어 안전사고 책임소재 불분명

[기술이 안전이다] 美·日 등 선진국은 기술사 권한·책임 막중

"다들 월드컵 축구를 하고 있는데 한국만 동네 축구 규칙을 적용하는게 말이 됩니까."

김재권 한국기술사회 회장은 기술사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업계의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새로운 자격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회도 이 같은 필요성을 공감하고 개정안 발의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 모두 PE 제도 운영

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에 기술사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1963년 11월이다. 기술사법 제정으로 기술사(PE) 제도가 도입됐다. 기술사법에는 기술사를 해당 기술분야에 관한 고도의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에 입각한 응용능력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국이 도입한 기술사 제도의 기원은 미국이다. 1907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최초의 PE(Professional Engineer) 제도가 탄생됐고, 1947년 몬타나주와 1950년 워싱턴DC를 마지막으로 미국 전역에 기술사법이 제정됐다. 현재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술사제도를 운영중이다.

문제는 한국의 기술사제도는 PE라는 명칭만 같을 뿐 그 권한이 미국 등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오직 PE에게만 현장 최고 책임자의 자리를 주면서 권한은 물론 이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까지 완벽히 지도록 해 놓은 게 본래 제도의 취지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선 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과 관련 업무 경력과 학력 등으로 자격을 인정받은 인정기술사가 같은 지위를 갖게 돼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검정시험이 아닌 일정 학력·경력만으로 기술사로 활동하는 인정기술사로 인해 기술사 관리 및 육성체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사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공학교육과 기술자격 제도의 연계 시스템 및 전문 활동 영역이 부재하다는 것도 문제다.

■국회, 기술사법 개정안 발의 준비 중

국회 등에 따르면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상민 의원이 기술사법 개정안 발의를 앞두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술사 직무에 대한 제한 규정을 신설해 설계도서 등은 기술사가 아닌 사람은 작성·제작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사 직무에 대해 공공의 안전확보를 담보하고, 기술사의 법적 권한을 부여하면서 책임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현행법에서도 기술사가 설계도서 등에 서명날인 하도록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기술사가 아닌 사람이 설계도서 등을 작성하거나 제작해도 벌칙규정이 없다. 개정안에는 기술사가 아닌 사람이 설계도서등을 작성하거나 제작한 경우 벌칙 규정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외국의 경우 모든 설계문서 등은 기술사가 직접 작성하거나 기술사의 책임 하에 작성하고 서명날인토록 하고 있다. 설계문서등에 대한 최종적 책임자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는 잇따라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 안전과도 직결되는 내용이다. 장기적 관점에선 우수 인력의 이공계 진입을 촉진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업계 간 의견 충돌이다. 지난 해에도 한국엔지니어링협회가 기술사법 개정안에 대해 "기술사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법안"이라며 발의 중단을 주장한 바 있다.

엔지니어링 현업에서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형 제도를 따라가는 것이 맞긴 하지만 한국적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일이 힘들 것"이라면서 "당장 기술사 자격을 보유한 인력이 부족해 인정기술사제를 도입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