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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있는 의결권 다 못쓰는데 대리행사도 막혀… 막막한 주주총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주주총회 규제
대주주 지분 아무리 많아도 감사선임때 3%만 권리행사
올해 섀도보팅까지 폐지.. 소액주주 많은 코스닥기업 의결정족수 요건 못맞춰 감사선임 부결 불보듯 뻔해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있는 의결권 다 못쓰는데 대리행사도 막혀… 막막한 주주총회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있는 의결권 다 못쓰는데 대리행사도 막혀… 막막한 주주총회

[강문순의 이슈 들여다보기] 있는 의결권 다 못쓰는데 대리행사도 막혀… 막막한 주주총회

#. 코스피 상장사인 에이프로젠제약은 오는 11월 올해 들어 네 번째 주주총회를 열 계획이다. 지난 3~4월 세 차례에 걸쳐 주총을 열었지만 의결 정족수 미달로 번번이 주총이 무산되면서 감사 선임 등의 안건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프로젠제약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이 25.28%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소액주주들이 갖고 있다. 그동안 회사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주주들의 주총 참석을 확대하려 애썼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로 감사를 뽑아야하는 상장사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감사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 '3%룰' 때문이다. 올해부터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감사 선임에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최대주주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장사일수록 감사 선임에 애를 먹어 관련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내년 감사 선임 난항 199곳

25일 한국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에 따르면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내년 주총에서 감사 선임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곳은 전체 상장사의 11%(199개사)에 이를 전망이다. 최대주주·특수관계인 지분, 5% 이상 지분 보유주주 수, 소액주주 평균 의결권 행사율(1.88%),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지분율 등을 고려한 결과다. 오는 2020년에는 이 수치가 244개사로 늘어날 전망이다.

섀도보팅이 전면 폐지된 후 처음 열린 올해 주총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는 총 76개사로 전년보다 8배 가까이 늘었다. 부결된 안건의 열에 일곱(73.7%)은 감사 선임의 건(56개사)이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감사 선임 안건이 부결된 56개사의 91%(51개사)가 코스닥기업이었다.

한국은 의결정족수 요건이 유독 까다롭다. 전체 주식수의 25%가 찬성해야 주총 안건이 통과된다. 감사를 뽑을 때는 대주주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의결권이 3%로 묶인다. 3%룰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지적이다.

외국의 경우 주총에 의결정족수 규제를 둔 곳은 많지 않다. 미국과 스위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의결정족수 자체가 없다. 주주 단 한 명만 참석해도 다수결로 결정된다. 영국은 2명 이상이다. 일본에선 전체 주식의 50% 이상 참석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업이 정관으로 이를 배제할 수 있다.

■전자투표 참여율 0%대

정부는 섀도보팅 폐지 대안으로 주총 개최일 분산과 전자투표 도입 등을 제시했으나 실제 효과는 크지 않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 가운데 40.8%(31개사)가 주총 개최일을 분산했고, 전자투표를 도입한 회사도 73.7%(56개사)나 됐지만 안건 부결 건수는 전년보다 훨씬 늘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섀도보팅으로 정족수를 채우던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업들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주총이 특정 날짜에 집중되고 전자투표, 서면투표 등 다양한 의결권 행사 제도가 정착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올해 국내 상장사의 주총 집중도(주총이 가장 많이 열린 3일간 개최 비중)는 60.5%로 지난해(70.4%)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금융당국이 목표로 삼은 40%대와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었다. 2014년 미국(10.3%)이나 독일(13.4%)은 물론 일본(48.4%) 보다 높다.

대안으로 제시됐던 전자투표는 유명무실하다. 지난해 전자투표 대상 주주 930만명 가운데 실제 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1만5035명(0.16%)에 그쳤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참여율도 0.5%였다. 전자투표가 도입된 지 8년이 지났지만 가장 높았던 참여율이 2014년의 0.96%에 불과할 정도다.

■상장사 "3%룰 완화해야"

상장사들은 3%룰 완화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입법조사처도 3%룰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올초만 해도 3%룰 완화에 부정적이었지만 부작용이 커지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황현영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18년 상장회사 정기주주총회 결과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주주총회 개최일 분산과 전자투표 도입은 의결 정족수 미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황 조사관은 해법으로 상법을 고쳐 3%룰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1962년 상법 제정 당시부터 감사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의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어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3%룰을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국회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3%룰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라며 "주주의 의결권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자본시장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