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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제조업 명맥 끊길라… 어수선한 청계천 공구거리

재개발 수정안 발표 앞둔 세운3
상인들 "무조건 반대 입장 아냐 제조업 생태계 맞춘 정책 필요"
서울시 "상인 목소리 최대 반영"

[현장르포] 제조업 명맥 끊길라… 어수선한 청계천 공구거리
15일 찾은 서울시 중구 세운3구역에서 한 상인이 뒷짐을 지고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서원 기자

서울시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계획 수정안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한 연말을 보름 앞둔 15일 서울시 중구 세운3구역을 찾았다. 세운3구역은 사업시행 계획 수정 중인 구역,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져 철거 중인 지역 등으로 쪼개져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주·철거·착공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 3-1·4·5 구역은 굴삭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로부터 1m 남짓한 골목길을 사이에 둔 세운 3-2·6·7구역에선 여전히 공구를 만들기 위해 상인들이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재개발 사업은 기본 계획이 수립되면 사업시행 계획을 통해 사업시행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후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떨어져야 전면 철거 후 공사가 시작된다. 세운 3-1·4·5구역 철거와 함께 만들어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 따르면 이 지역은 아직 관리처분인가가 나지 않아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구역의 상인들이 재개발 여파로 피해를 입고 있다.

30년째 이곳에서 제조업을 이어왔다는 태광정밀 조무호 대표(60)는 "거래처도 '곧 재개발로 사라지지 않냐'며 발길을 끊었다"며 "제조업 생태계를 같이 만들어온 동료들이 사라지자 일거리도 줄었다"고 했다.

상인들은 재개발을 무조건 반대한다는 입장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계천 복원에 따른 상가보상 의미로 송파구에 지어진 가든파이브처럼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이주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든파이브와 같은 건물은 공구 상인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청계천 공구거리는 지난 70년 간 장인 1만여명이 모여 하나의 제조업 생태계를 이뤄 협업이 이뤄지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재개발 계획으로 파주·영등포·남양주 등지로 이주한 상인들 중 절반은 폐업했다는 게 청계천에 남은 대표들의 설명이다.

신한정밀 정연전 사장(52)은 "공구업계는 도장·주물·프레스 등 기계가 크다 보니 건물 안 점포에 들이지 못한다"며 "영업할 수 있는 업종에 한계가 있다 보니 그런 공간에선 협업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신 대표는 이어 "새로운 터전에서 정착하기가 어려워 입주했다가 도로 나온 사장이 절반 이상"이라며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진 청계천 제조업 생태계를 그대로 옮기지 않는 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보니 제조업 생태계 보존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안근철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 연구원은 "평균 30년째 제조업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장인들이 역사를 이어 다음 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서울시는 재개발을 즉각 중단하고 이곳을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노포를 둘러싼 구역은 남겨두는 방향으로 하되 나머지 구역에서도 최대한 산업 생태계를 보존하는 쪽으로 재개발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연말까지 최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발표하기 위해 여러 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기존 환경을 유지하고 싶은 상인들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김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