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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 35분 나홀로 지혈... 무면허 의료행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기소이유통지서로 살핀 '권대희 사건'
수술실 3곳 오가며 수술해도 '감독' 인정
35분 간호조무사 홀로 지혈... '길지 않다'

[파이낸셜뉴스] 의료사고 재판에서 의료법은 핵심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료사고로 사람이 다치거나 심하게는 죽음에 이르더라도 형법상 업무상과실 치사상으로는 구속을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형법 제268조가 규율하는 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 처벌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모두 집행유예 대상이 된다.

반면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가 인정될 경우 의사 자격을 정지하고 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정지 또는 취소할 수 있다. 병원 입장에선 피해가 훨씬 크다. 동시에 수술실 여러곳을 열고 ‘공장식 수술’을 하거나 약속되지 않은 일명 '유령의사'가 수술을 한 경우에도 한국 법조계가 형법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물론 상해나 사기죄도 적용하지 않고 있어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면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없는 실정이다.

의료사고 피해 유족이 의료법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다.

2016년 서울 신사동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로 숨진 고 권대희씨 사건도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가 쟁점이 되고 있다. 경찰은 2년 가까운 수사 끝에 의료진의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이 1년 넘게 재수사해 이를 뒤집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는 지난해 11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병원장 등 의료진을 재판에 넘겼다.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등의 혐의는 제외됐다. 이에 따라 법원에서 모든 혐의가 유죄로 판결나도 의료진이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족은 즉각 반발했다. 서울고등검찰청에 불기소 처분을 재고해달라고 항고했지만 고검에선 이를 기각했다. 처분을 부당하다고 볼 자료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본지 2월 15일. ‘[단독] 검찰, '권대희 사건' 항고 기각... "약자 눈물 닦는 검찰은 어디에"’ 참조>

유족은 검찰 기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마지막 절차인 재정신청을 법원에 접수한 상태다. 법원은 검찰 처분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검토에 돌입했다.

간호조무사 35분 나홀로 지혈... 무면허 의료행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2020년도 신년다짐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총장은 "강자의 횡포를 막아내고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검찰 본연의 소임에 모자람이 없도록 하자"고 주문한 바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검찰, 무면허 의료행위 불기소한 이유는?

검찰이 간호조무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원장 등 의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혐의를 불기소한 이유는 본지가 입수한 불기소이유통지서에 그대로 드러난다. 해당 문건은 담당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가 작성했다.

검찰이 간호조무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10가지에 이른다. 이를 요약하면 다시 2가지로 추려지는데 다음과 같다.

△간호조무사들의 지혈행위는 보조의사 신모씨의 지혈행위의 연장으로, 의사의 지시·감독 아래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 △권씨에 대한 지혈이 반드시 의사만 해야 하는 고도의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 검사는 간호조무사들이 의사가 없는 동안 지혈한 시간이 약 35분 정도로 권씨에 대한 전체 지혈시간에 비추어 그다지 길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보조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오기 전에 간호조무사에게 어느 부위를 압박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점, 간호조무사가 할 일이 얼굴을 눌러 지혈하는 것 외에 달리 없었다는 점, 인접한 수술실에 3명의 의사가 있었다는 점, 의사가 지혈행위의 개시와 종료를 결정한 점 등을 들어 ‘구체적인 지도·감독’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수술 중 지혈행위 역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조무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범위라는 주장도 덧붙인다.

간호조무사의 지혈이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므로, 의료진의 교사·방조도 성립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결국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유족 측은 법원에서 무면허 의료행위 여부를 다툴 기회를 잃고 말았다.

간호조무사 35분 나홀로 지혈... 무면허 의료행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 권대희씨는 지난 2016년 서초구 ㅈ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과다출혈로 중태에 빠져 이송된 대학병원에서 49일만에 숨졌다. 사진은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당시 간호조무사가 화장을 고치는 모습. / 제공=고 권대희씨 유족

■전문기관 감정·대법원 판례 있는데...

하지만 유족을 비롯해 본지와 사건을 함께 검토한 다수 변호사들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충분히 기소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전문 감정기관들이 내놓은 감정회신이 그 근거가 된다.

우선 경찰청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뢰해 2018년 2월 받은 감정회신에서, 중재원은 ‘모두 자리를 비운 동안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지혈하였다면, 의사의 지배하에 의료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검찰이 불기소이유통지서에서 '길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35분 동안 두 간호조무사가 수술실로 번갈아 들어와 홀로 권씨를 지혈한 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중재원은 또한 ‘수술 중 지혈 행위는 일반 환경의 지혈과 달리 의료 행위에 포함’된다며 ‘의사의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지혈을 맡기는 것은 적법한 행위로 볼 수 없음’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청이 누리메디컬컨설팅에 질의한 결과에서도 ‘간호조무사 혼자 수술방에서 피해자의 수술부위를 지혈했다면 면허에서 허가한 진료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는 답이 나왔다.

대법원 판결도 검찰의 판단과 대척점에 서 있다. 대법원은 의사가 피부관리사들에게 환자의 얼굴 각질을 제거하는 피부박피술을 시행하도록 한 사건(2003도2903 판결), 속눈썹이식시술 중 간호조무사에게 이식된 모발의 방향을 수정하도록 지시한 사건(2005도8317 판결) 등에서 이들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끌어낸 바 있다.

해당 판례들은 비 의료인이 의사와 동일한 수준의 전문지식을 갖췄거나 의사가 곁에서 구체적으로 행위를 지시했다고 할지라도, 행위자가 의사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는 담당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가 병원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며 작성한 공소장에서도 인정한 부분이다. 성 검사는 공소장에서 해당 성형외과의 수술방식을 설명하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마취과 의사가 환자를 마취하면 원장이 환자의 뼈를 자른다. 다음으로 보조의사가 원장이 절골까지만 진행한 부위를 세척한 뒤 구강 내 절개부위를 봉합하고, 얼굴 부위에 붕대를 감으면 수술이 종료된다. 당혹스러운 점은 이 과정이 한 수술실이 아니라 여러 수술실에서 연달아 벌어진다는데 있다. 권씨가 수술을 받던 날도 3곳에서 동시 수술이 진행됐다.

검찰 공소장은 ‘수술이 연이어 시행되었고 이러한 수술 진행 방식에서는 수술에 관여하는 의사들이 각 환자의 출혈 정도 등을 고려한 건강 상태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할 여유 없이 연속적으로 수술만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위 성형외과 원장인 피고인이 고안한 방식’이라고 적고 있다. 이 같은 수술이 이뤄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단시간 내에 많은 환자의 수술을 시행하기 위해’라고 적어, 해당 병원의 수술방식과 이 방식 속에서 의료진이 각 환자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권씨 생전 절친했던 친구는 권씨가 해당 병원과 상담할 당시 원장이 수술을 끝까지 책임진다고 말해 권씨가 안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본지 3월 14일. ‘사람이 죽었는데 '14년 무사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참조>

그렇다면 이쯤에서 묻는다.
당신은 이 사건에서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혐의를 불기소한 검찰의 처분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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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