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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 담긴 상징적 공간… 예외 없이 구설 휘말리기도 [이슈분석]

文대통령, 양산 평산마을 부지 매입
노무현, 고향에서 정치이념 실천
서울 떠나지 않은 김대중·이명박
‘전직 대통령 역할’ 활동 지속 의지

한국 정치사 담긴 상징적 공간… 예외 없이 구설 휘말리기도 [이슈분석]
한국 정치사 담긴 상징적 공간… 예외 없이 구설 휘말리기도 [이슈분석]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 부지매입과 함께 역대 대통령이 퇴임 후 지낸 '사저(私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취임 전 지내던 집으로 돌아가거나 지방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는 등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퇴임 후 구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저는 그 자체로 한국 정치사가 담긴 상징적 공간인 것이다.

■현실정치 '거리두기'

7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퇴임 후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에 거주할 계획이다. '현실정치'와는 확실히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문 대통령도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퇴임 이후 구상을 묻는 질문에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며 "대통령 이후에 현실정치와 계속 연관을 가지거나 그런 것을 일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5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붓고 퇴임 이후에는 철저하게 잊혀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열린 사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해당될지는 모르겠지만 문 대통령의 퇴임 후 구상과는 크게 다르다"고 귀띔했다.

다만 현실정치 이외 영역의 역할론은 유효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K방역'을 비롯해 한반도 평화문제 등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특히 퇴임 후의 행보가 친구이자 정치적 선배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많이 닮아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퇴임 후 낙향을 선택했다.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고 싶어했던 노 전 대통령은 사저 지붕을 주변 산맥과 어울리도록 낮고 평평하게 지었다. 사저 이름을 '지붕 낮은 집'이라고 지었다. 문 대통령이 양산 사저부지 이전 결정을 하면서 "새 부지를 마련하더라도 (기존) 매곡동 자택 규모보다는 크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를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천했다. 퇴임 후 낙향을 선택한 것 자체가 지방분권을 강하게 추진했던 참여정부의 국정철학을 직접 이행한다는 의미였다. 사저 곳곳에 평생의 좌우명이었던 '우공이산'과 그가 꿈꿨던 '사람사는세상' 글씨를 걸어 놨다. 벽에 남겨진 손녀의 낙서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보여준다.

틈날 때마다 사저 앞 언덕에 올라 시민들과 가벼운 이야기도 나눴다. 때로는 무거운 주제로 즉석 강연도 펼쳤다. 사저가 '시민 노무현'과 세상의 소통창구가 된 것이다.

■"국정운영 경험 살려야"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은 임기를 마친 후에도 모두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전남 신안이 고향인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머물렀다. 생애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숙원 중 하나인 한반도 평화를 통한 동북아 평화구상의 완성을 위해서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정기적으로 신장투석을 받으면서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국제적 지도자로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전개했다. 국내외의 각종 언론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동북아 및 세계 평화를 위한 각종 구상을 발표했다. 국내외 대학과 주요 단체 등의 강연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전 살았던 서울 논현동 자택을 재건축해 퇴임 후 돌아갔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크게 반영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녹색성장 전파 △4대강사업 연구 △전직 대통령으로서 '민간외교' 모색 등 임기 내 강한 애착을 보였던 분야와 관련한 활동을 지속하고자 했다.

MB정부 시절 한 참모진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특히 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등을 통해 외국 정상들과 관계가 좋았고 외교적 성과가 크다고 자부했다. 이에 퇴임 후에도 해외 초청 및 강연이 잦았다"고 설명했다.

경남 거제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도 취임 전 살던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정치행보를 이어갔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을 만날 때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거침없이 밝혔지만 이로 인한 논란도 작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가원로가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 헌법에는 전직 대통령 등을 포함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구성할 수 있도록 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며 "이런 점에서 퇴임 후 대통령들이 국정 경험을 살려 다양한 분야의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국가적 어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fnkhy@fnnews.com 김호연 송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