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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C가 대기업의 유일한 벤처투자 방법일까 [이슈 분석]

CVC가 대기업의 유일한 벤처투자 방법일까 [이슈 분석]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을 하고 있다. 이날 박 장관은 ""CVC가 벤처투자 목적에 벗어나는 투자를 하는 경우는 철저히 막아야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벤처업계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기업형 벤처캐피털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털도 조속히 결론을 내고 도입하는 등 혁신성이 높은 벤처기업에 시중의 유동성이 충분히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은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털(VC)이다. 대기업은 벤처캐피털 계열사를 통해 우량 스타트업에 투자하다가, 모(母)기업의 사업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다. 대기업 측에선 '기업의 혁신'과 '벤처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CVC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30일 벤처업계에서는 CVC가 기업의 혁신과 벤처시장 활성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인가라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투자 △사내벤처 △운용사 설립 △기관투자자로 참여 등 4가지다.

대기업의 벤처투자 방법
구분 내용 해외 주요 사례 국내 가능 여부
직접투자(Balance Sheet 모델) 기업의 자체 자금으로 유명기업 직접투자 보쉬, 파나소닉 가능
사내 벤처(Corporate Venture) 기업 내 사내벤처팀 운영해, 투자 후 분사 구글(나이앤틱 등), 3M, 가능
운용사 설립(GP 모델) 벤처캐피털 만들어서 벤처펀드 운용 유니레버 벤처스(Unilever Ventures), 블룸버그 베타(Bloomberg Beta) -지주회사가 아닌 기업은 설립 가능 -지주회사의 CVC 설립 불가 (금산분리 원칙)"
기관투자자로 참여(LP 모델) 기관투자자로 외부의 벤처캐피털이 운용하는 펀드 등에 간접투자 지멘스 벤처캐피털(SVC), 피직 (유니레버) 가능
(자료 : BVCA(British Private Equity & Venture Capital Association) 등)

국내 대기업이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는 벤처투자 방식은 사내벤처 운영이다. 가장 성공적인 사내벤처 프로그램은 삼성전자의 씨랩(C-Lab)이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45개의 사내벤처가 스핀오프(분사)해 법인 설립에 성공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도 지난 2018년부터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운영기업이 사내벤처팀과 분사창업기업을 선발해 육성하면 정부가 사업화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대기업, 중견·중소기업, 공기업을 포함해 총 89개사가 참여한다.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은 벤처투자 형태는 '운용사 설립' 방식이다. 이 방식도 모든 기업이 허용되지 않는 건 아니다. 지주회사가 아닌 경우, CVC를 설립할 수 있다. 실제로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이나 카카오 등이 CVC를 운영하고 있다.

지주회사의 CVC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다. 이 때문에 지주사 체제인 SK나 LG 등은 CVC 설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CVC가 없는 지주회사는 스타트업 투자시 지분 40% 이상을 확보해 자회사로 보유하거나, 5% 미만의 지분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주회사의 CVC 지배를 금지한 것이 대기업 벤처 투자의 핵심적인 제약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해도 벤처 투자 확대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CVC가 없는 지주회사들에게 기관투자자로 참여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벤처투자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유효상 숭실대학교 교수는 "대기업이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며 "대기업은 투자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재무적 투자·FI)가 아니라 자신들의 혁신(전략적 투자·SI)을 위해 벤처에 투자하는 만큼, CVC에 집착할 필요 없이 다양한 루트로 혁신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 교수는 "굳이 CVC를 운영하고 싶다면,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 해외에 CVC를 설립해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는 "벤처투자 경험이 부족한 대기업이 CVC를 운용하려면 그룹 차원에서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확실한 M&A 예산을 확보하고, 자신들 전문분야의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