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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허용하되 죄는 그대로"… 폐지도, 금지도 아닌 '낙태죄 개정안' [이슈 분석]

14주까지 낙태 합법화했지만
사문화 낙태죄를 정부가 살려내
찬반 양측 모두 "잘못됐다" 반발
낙태 시술 건보 적용 등 벌써 논란

'임신 14주까지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대신 낙태죄는 존치하겠다'는 내용의 정부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이 지난 7일 공개된 이후 찬성·반대측 모두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각각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와 '생명 경시 우려' 등의 이유로 찬반의사표시를 했던 단체들은 정부 개정안을 비판했다.

11일 정부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정부는 연내 낙태죄 개정을 마친다는 방침이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낙태죄 개정으로 '먹는 낙태약'이 도입 예정이나, 안전성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실정이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도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낙태죄를 둘러싼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애매한 개정'에 찬·반 모두 반발


낙태 금지를 요구하는 '행동하는프로라이프'는 입법예고 당일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를 조장할 것"이라며 정부 결정에 반대했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해오던 단체들도 개정안을 비판했다. 시민단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반하는 명백한 후퇴"라고 반발했다.

동일한 개정안에 찬·반 양측이 모두 반발한 것은 개정안의 모호성 탓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라고 판정했지만, 정부는 존치를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헌재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한 기간인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키로 했다.

'낙태죄 폐지'와 '낙태 금지'라는 양측의 주장을 어느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셈이다. 낙태의 대부분이 이뤄지는 임신 초기의 중절수술을 허용하면서 낙태죄를 사실상 '사문화' 시켰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부도 이와 관련한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어느 하나 소홀할 수 없는 가치"라며 "정부는 실질적 조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입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건강보험·낙태약, '후속 논란' 일 듯


헌재가 올해 12월 말까지 형법상 낙태죄를 개선할 것을 주문한만큼, 정부는 연내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낙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 후속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우선 임신중절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여부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합법화되는 모든 낙태 시술에 건보를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 상에는 강간으로 임신했거나 산모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 등 4가지 경우에 한해 건보 보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임신 14주 이내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개인의 선택'으로 받는 수술에 보험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합법적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건보) 적용 여부에 대해 전문가 등과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으로 약물을 통한 낙태도 가능해지면서, 이른바 '낙태약'의 정식 수입 여부도 관심거리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재 불법인 유산 유도제 '미프진'이 합법화된다.

다만 처방전 없이 복용할 시의 부작용, 불법 유통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 등이 논의의 걸림돌이다.

시민단체 '행동하는프로라이프' 측은 "이 약물을 합법적으로 손에 쥐게 된 청소년들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약물에 의한 낙태가 실패해 출산을 할 경우, 12%의 태아가 선천적 결함을 갖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