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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독설가 장훈의 이치로 칭찬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독설가 장훈의 이치로 칭찬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스즈키 이치로 /사진=뉴시스

장훈(80)에게 스즈키 이치로(47)는 애증의 관계다. 재일동포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이다. 일본 프로야구 최전성기 ‘홈런’의 오 사다하루(왕정치), ‘인기’의 나가시마 시게오, ‘타율 및 안타’의 장훈으로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오 사다하루와 나가시마의 아성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오 사다하루는 통산 868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나가시마는 ‘미스터 베이스볼’로 불린다. 그는 일왕 다음으로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장훈은 세 개의 일본 프로야구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4년 연속 타격왕, 한 시즌 최고 타율(0.383), 통산 최다 안타(3085개). 앞의 두 기록은 이치로에 의해 깨졌다. 세 번째 기록도 사라질 뻔했으나 이치로가 메이저리그로 건너가는 바람에 간신히 건져냈다.

이치로는 일본 프로야구서 9년 동안 1278개 안타를 만들어냈다. 미국으로 건너가 19년 동안 3089개를 더해 도합 4367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이치로는 풀타임으로 1군 무대에 데뷔한 1994년 3할8푼5리의 고타율을 남겼다. 1970년 장훈이 기록한 최고 타율을 24년 만에 경신했다. 자신의 첫 타격왕 타이틀이었다. 이후 7년 내리 타격 1위를 도맡아 했다. 장훈이 23년 동안 이룬 업적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독설가 장훈의 이치로 칭찬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재일동포 장훈 /사진=뉴시스
장훈은 1967년부터 4년 연속 타격 1위에 올랐다. 이 기록은 깨지기 힘들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치로가 3년이나 더 늘려 놓았다. 2001년 메이저리그로 건너가 첫해 수위에 올랐으니 8년 연속이나 마찬가지다.

이치로가 일본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장훈의 통산 최다 안타 기록도 깨졌을 것이다. 그러니 장훈으로선 이치로가 대견한 후배이지만 마냥 예쁠 수만은 없다.

이치로와 장훈은 여러모로 닮았다. 둘 다 정통 타격 폼은 아니었다. 장훈은 배트를 수직에 가깝게 들고 타격에 임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렸지만 누구도 장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치로는 건들건들 움직이며 이른바 ‘진자타법’을 구사한다. 2군 시절만 해도 감독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 따위 폼으론 어림없다. 하지만 1993년 2군에서 0.371(규정타석 미달)를 기록하자 1군으로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치로는 우투좌타다. 원래 오른손잡이다. 장훈은 좌투좌타이지만 원래는 오른손잡이다. 어린시절 불가에서 놀다가 오른손에 화상을 입어 억지 왼손잡이가 됐다. 장훈이 만약 원래 왼손잡이였다면 오 사다하루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쳤을 것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장훈은 통산 504개의 홈런을 기록.

장훈은 지난 6일 일본 TBS TV ‘선데이 모닝’ 프로그램에 출연 이치로를 칭찬했다. 일본 프로야구서 독설가로 통하는 장훈은 일본 선수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이치로는 최근 일본의 한 고교야구팀을 방문해 선수들을 지도했다.

장훈은 “앞으로 이치로 같은 선수가 많이 나와야 한다. 왼손타자 이치로가 고교 선수를 지도했으니 오치아이 히로미츠(타격 3관왕 3회·일본 야구 기록) 같은 오른손 타자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설은 전설끼리 통하나 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