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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과 한화의 겨울나기 차이점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두산과 한화의 겨울나기 차이점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6년 최대 56억원에 원 소속 구단 두산 베어스와 계약한 정수빈 /사진=뉴시스
야구선수와 구단주가 주량 대결을 벌이면 누가 이길까.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전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두산(당시 OB)은 원년 우승팀이다. 잔치에 술이 빠질 리 없었다. 마침 OB는 술 회사였다. 다른 기업에 비해 술 문화에 관대했다. 오너들의 술 실력도 어지간하다고 전해졌다.

선수들은 벼르고 별렀다. 구단주를 한 번 골탕 먹이자. OB 원년 멤버 가운데는 윤동균, 김우열, 김유동, 계형철 등 내로라하는 야구계 술꾼들이 즐비했다. 만찬주로 ‘모두모아’가 나왔다.

당시 OB에서 생산되는 모든 술을 한 잔씩 부어 만든 특별 제조주였다. 맥주에서 위스키까지 모든 술이 총망라됐다. 만50세 박용곤 구단주부터 쭉 한 잔 마셨다. 한창 20~30대 선수들이 마다할 리 없었다.

첫잔을 견뎌낸 이는 몇 되지 않았다. 모두 나가 떨어졌다. 두번째 잔이 나왔을 때 살아남은 몇몇 이가 도전했다. 마지막 빈 잔 확인까지 마친 이는 딱 둘 뿐이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천하의 주당 윤동균과 박용곤 구단주였다.

이날 OB 선수들은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 앞으로 구단주와 절대 술내기를 벌이면 안 된다. 또 하나, OB 구단 오너가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지를.

두산이 FA(자유계약선수) 정수빈(30)의 빠른 발을 붙잡았다. 두산은 16일 정수빈과 6년 최대 56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정수빈은 두산보다 조금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한화 대신 원 소속팀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두산은 허경민(30·7년 최대 85억원)에 이어 두 명의 FA를 곰 둥지에 계속 머물게 하는 데 성공했다. 최주환(SK)과 오재일(삼성)은 놓쳤지만 모 그룹의 엄혹한 겨울 사정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정이다.

두산과 한화의 겨울나기 차이점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FA계약을 마친 두산 허경민(오른쪽)이 전풍 사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두산은 올 겨울 주력 7명을 FA 시장에 내보냈다. ‘왕조’ 유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 KIA, SK, 한화 등 실탄이 풍부한 구단들이 알토란 같은 선수들을 낚아채려고 발톱을 세웠다. 그런 와중에 향후 수년간 팀의 버팀목이 되어 줄 두 선수를 건져냈다.

이 둘과 일반적 FA 계약인 4년이 아닌 6~7년 계약한 사실도 놀랍다. 선수들은 총액 규모에서 만족할 수 있고, 구단은 장기적으로 내·외야의 안정을 기할 수 있어서 말 그대로 ‘윈윈’이다. 김재호(유격수)와 유희관(투수)까지 붙잡는다면 대단한 성과다.

곰은 한가한 겨울잠을 포기했다. 반면 독수리 둥지에는 삭풍이 불고 있다. 내년 농사의 상당 부문에 기여할 외국인 투수 두 명을 총액 105만달러(11억4600만원)에 뚝딱 계약한 후 FA 시장에 좀처럼 보따리를 풀어놓지 않고 있다.

한화는 수년 전 정근우(70억원), 이용규(67억원)를 데려 오는데 엄청난 돈을 썼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 상처 때문일까. 이후 적극적으로 FA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한화의 겨울은 그렇게 길어지고 있다.

겨울이 깊어지면 소나무의 푸름은 한결 더 빛나는 법이다. 추사 김정희는 엄혹한 제주 유배 생활 도중 '세한도'(국보 180호)를 그렸다. 어려울 때 기꺼이 주머니를 연 두산의 심정이 이 같을까.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