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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무에 공직 떠나는 수의사들… 가축전염병 방역 구멍 우려 [이슈 분석]

AI 확산되는데 수의직 공무원 인력난
경기북부 등 축산농가 시·군은
수의직 공무원 인력난에 허덕
방역 업무 전부를 한두명이 챙겨

코로나19 확산세 못지않게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방역 최전선에 투입된 수의직 공무원들이 고된 업무를 견디다 못해 공직을 떠나고 있다. 동물보호 업무가 늘어난 덕에 지자체 수의직 공무원 숫자는 지난 5년간 300명 넘게 늘었지만, 축산 농가가 많은 기초 시·군은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가축 전염병 방역에 구멍이 발생할 우려가 큰 상황이다.

격무에 공직 떠나는 수의사들… 가축전염병 방역 구멍 우려 [이슈 분석]
■채용공고 내도 지원자 없어

2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자체 소속 수의직 공무원은 2015년 말 964명에서 2019년 말 1302명으로, 총 338명이 늘었다. 지자체 수의직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동물보호'와 '가축전염병 방역' 업무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유기견 보호, 반려동물 정책 등 동물보호 업무가 늘어난 터라 수의직 공무원 숫자가 증가한 것이다.

반면 경기 북부 등 축산 농가가 다수 위치한 기초 시·군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방역업무에 투입된 뒤 고된 업무를 견디다 못해 공직을 떠나는 것이다. 이미 업무 강도가 상당하다는 소문까지 나버린 탓에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상황이다.

인력 한두 명이 방역 업무의 전체 과정을 하나하나 챙겨야 하는 구조라는 게 일선 지자체의 목소리다. 경기 북부 A지자체 관계자는 "살처분 매몰 장소를 확인하고, 살처분 과정을 감독하는 것은 물론 피해 농가에 지급하는 보상금, 생활안정자금을 처리하는 일 모두 수의직이 해야 하는 일"이라며 "돼지 수십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보조 인력이 있어도 결국 수의직 공무원이 모두 살펴봐야 하는 탓에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광역 시·도가 뽑아서 보내달라"

혹시 보수가 적은 탓은 아닐까 싶었지만, 10년 넘게 기초 시·군의 수의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B씨는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수의직에 할당되는 업무량을 '한계를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열 사람이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등으로 수식했다. B씨는 "경력을 다 인정받은 40~50대분들이 오시는 경우가 많다. 금전적으로는 보상이 된다"며 "밤새워 일해도 업무처리가 많아 결국 그만두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경기 파주시 수의직 공무원이 방역 업무로 과로에 시달리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결국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기초 지자체들은 광역 시·도가 수의직을 일괄 채용한 뒤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광역 지자체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광역 지자체 담당자는 "소속이 다르면 업무 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광역 지자체가 뽑아서) 순환보직을 하더라도 시·군에 발령을 내면 그만둘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수의사무관(5급)' 채용 확대를 제안했다. 그는 "현재 수의직이 대부분이 7급인데, 조례를 제정해 5급 수의사무관 채용이 가능하다"며 "이들에게 과장 직위를 맡겨 권한을 주고 수의직 외 인력 운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