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됐다고 한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는 뜻으로 이른바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옮긴 일종의 신조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상황에서도 반복된 정치·사회 전반의 소모적인 갈등을 꼬집은 것이다. '아시타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도 '후안무치'(厚顔無恥)다.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으로, 사실상 아시타비와 같은 의미다.
202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 아시타비의 예는 무수히 많았다. 최고의 아시타비를 뽑는 '연말 시상식'이 열린다면 유력 후보를 헤아리기 쉽지 않을 정도다. 교수사회는 이 중 진영논리에 매몰돼 정파싸움에만 열을 올린 정치권을 첫손에 꼽았다. 코로나19로 모든 국민의 삶이 팍팍해진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행위를 반복한 정치권에 대한 책망의 의미로 읽힌다. 한 교수는 "올 한 해 유독 정치권이 여야 두 편으로 딱 갈려 사사건건 서로 공격하며, 잘못된 것은 기어코 남 탓으로 공방하는 상황이 지속됐다"고 꼬집었다.
물론 정치권의 실망스러운 태도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국민은 일류, 경제는 이류, 정치는 삼류'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극한대립을 이어온 한국 근대 정치사를 감안하면 정치풍토가 일순간에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언감생심일 게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온 나라가 시름했고, 여전히 고통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만큼은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을 위로하고 기대와 희망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정쟁과 막말 등으로 국민의 피로감을 가중시키지는 말았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과 8개월 전 앞다퉈 '국민의 공복'을 자임하며 한 표를 간곡히 부탁하던 자신들의 모습은 흘러간 유행가처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미국 정치개혁가인 제임스 클라크가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진정한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며 진정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를 역설한 이유를 새삼 생각케 한다.
일주일 후면 코로나19에 지배돼 버린 2020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년 내내 우리네 삶을 옭아맨 '코로나19의 해'가 막을 내리고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떠오른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국민들의 마음은 희망보다는 걱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일 확진자가 여전히 1000명대를 오갈 정도로 코로나19의 기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로 천학지어(말라가는 샘에서 물고기들이 서로를 돕는다)를 꼽으며 우리 국민성을 치켜세우고, 국민이 중심이 된 'K방역'에 전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다고는 하지만 국민이 직면해야 할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국민의 아픔을 해결할 정치가 절실한 때다. 말라가는 샘에 사는 물고기들에게는 물 한바가지도 생명 연장에 큰 도움이 된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국민이 정치에 바라는 모습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연말이면 정치인들이 '후원금'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심심찮게 받아 본다.
하나같이 그들만의 기준으로 선정한 의정활동 성과와 지역구민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각오 그리고 후원계좌가 적시돼 있다. 물론 모든 정치인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후원을 받아 마땅한 이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얼마나 많은 정치인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이 역시 그들의 '아시타비'는 아닐까. fnkhy@fnnews.com 김호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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