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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KIA에 남았으면 한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파이낸셜뉴스]
양현종, KIA에 남았으면 한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지난 4년 간 60승을 올린 KIA 에이스 양현종. /사진=뉴시스

1980년 대 광주 무등야구장에는 어김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빠르면 5,6회, 조금 늦으면 7,8회 이 노래가 들려온다. 한, 두 명을 시작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금세 만 명의 합창으로 변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거대한 떼창이 시작되면 무등야구장은 무거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경기의 흐름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1980년대 해태(현 KIA)가 전성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노래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KIA와 해태는 무등야구장서 10번 우승했다. 2013년 10월 4일 이곳에서 마지막 타이거즈 경기가 열렸다. 상대는 넥센(현 키움)이었다. 경기는 7회 말까지 3-3 동점. 결국 넥센이 8-3으로 이겼다.

이 경기 KIA의 선발 투수는 양현종(당시 25세)이었다. 6이닝 2실점(1자책)하고 물러나 승패를 기록하진 않았다. KIA는 무등야구장의 마지막 경기에 양현종을 맞춤 선발로 투입했다. 9월 27일 SK전 이후 7일 만의 등판이었다.

양현종은 이듬해 기아 챔피언스 필드 구장 개장 첫 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옛 홈구장과의 작별과 새 구장의 개장 테이프를 모두 한 투수가 도맡았다. 에이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동열 이후 가장 충실히 그 역할을 해낸 투수다.

양현종은 NC를 상대로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전해 무등야구장 고별전서 못한 승리투수를 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경기서 해냈다. 그해 양현종은 16승 8패 평균자책점 4.25를 기록했다.

양현종은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했다. 그러나 응찰 금액이 본인이나 KIA구단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2년 후 FA자격을 얻어 다시 도전했다. 역시 흡족한 제안을 받지 못했다. 일본 진출 얘기도 흘러나왔으나 자녀 교육 등 고려할 점이 많아 포기했다.

양현종은 이번 겨울 마지막(그의 나이가 33세임을 감안하면)으로 메이저리그 문을 노크하고 있다. 아직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양현종은 스스로 20일까지를 데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두 가지 답을 손에 쥐긴 어려워 보인다.

마이너리그 거부권과 납득할 수 있는 대우다. 그 두 가지를 다 얻기엔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를 포기하기엔 KIA와 한국 야구의 에이스라는 자존심이 브레이크를 건다.

그런 조건이라면 2014년 첫 번째 진출 시도 때 눈 딱 감고 갔어야 했다. 어차피 늦었다. 그럴 바엔 국내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스가노 도모유키도 도쿄로 귀항했다.

KIA는 양현종에게 4년 계약을 제시했다. 에이스에 합당한 조건이라면 챔피언스 필드에 남는 편이 좋지 않을까. 김현수(LG)는 4년 115억 원, 양의지(NC)는 4년 125억 원에 계약했다.


양현종은 FA 자격을 얻은 후 지난 4년간 60승(35패)을 올렸다. 역대 FA 투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적이다.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어 KIA 에이스의 유효기간을 늘려주었으면 한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