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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끼리 키스, TV에서 볼 수 없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BS 설특선 <보헤미안 랩소디> 키스신 편집
방송통신심의위, 국가인권위원회 문제제기
음란하지 않을 경우 방영 막는 규정 없어
"예술작품 훼손" vs "아이들도 보는데"

[파이낸셜뉴스] SBS가 설 특선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하며 극중 남성 간 키스 장면을 편집한 것과 관련해 차별논란이 일고 있다. 극중 갈등의 핵심요소인 동성애 장면을 편집한 것이 사실상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란 주장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심의 신청 및 진정이 이뤄져 이들 기관이 SBS의 편집행위가 적절했느냐를 판단하게 됐다.

남성끼리 키스, TV에서 볼 수 없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남성끼리 키스, 방송돼선 안 될까
23일 방심위와 인권위에 따르면 최근 이들 기관에 SBS의 '보헤미안 랩소디' 편집이 부적절했다는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SBS가 설 특선영화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보헤미안 랩소디'를 편성해 방영하며 두 장면을 삭제하고 일부 모자이크해 내보낸 데 대한 것이다. 해당 장면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남성 간 키스하는 장면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조치에 시대착오적이며 차별적이란 비판이 일자 SBS는 “심의규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인권단체들에선 즉각 비판이 쏟아졌다. 심의규정엔 남성 간 키스를 포함해 동성애 방영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심의기준은 헌정질서를 어지럽히거나 법령위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가 노출되는 걸 금지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사항을 예시로 나열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강간 등 성범죄 묘사, 성행위의 자극적 표현, 구강과 항문을 이용한 유사성교행위 등은 시정조치의 대상이 된다. 동성애 묘사를 제한한다는 언급은 전무하다.

SBS의 조치가 도리어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신체장애인으로 장애인 인권단체를 후원하고 있는 김준모씨(44)는 “방송국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근거도 없이 특정 소수자의 행위를 잘라내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장애인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도 턱없이 적은 걸 보면 한국의 방송국은 편견에 찌들어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규탄했다.

영화인들도 반발하고 있다. 감독이나 제작자의 의사 없이 방송국이 영화의 주요 장면에 손을 댔다는 점이 반발의 이유다. 극장 프로그래머로 활동해온 손지현씨(30대·여)는 “영화는 그 자체로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예술작품”이라며 “SBS가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삭제하고 모자이크 처리했다는 그 자체가 지금이 2021년이 맞는지 눈을 비벼 보게 된다”고 비판했다.

SBS를 포함한 방송국이 자체 드라마 등에서 범죄와 성, 자살 묘사 등을 부적절하게 해왔다는 점도 비판을 받는다. 오랫동안 인권단체를 후원했다는 주현영씨(36·여)“규정이 금지하는 자살이나 폭력, 성묘사는 자극적으로 하면서 영화 전개에 꼭 필요한 장면에 손을 대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감독이나 제작자가 자기 영화가 이렇게 편집된 걸 알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겠나”하고 했다.

남성끼리 키스, TV에서 볼 수 없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BS의 동성애 장면 편집이 동성애를 그릇된 것으로 보는 편협한 성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fnDB

■"부모랑 같이 보는 아이도 있는데"
장면 편집은 방송국의 선택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페인 앤 글로리' 사례에서처럼 배급사도 개봉영화를 자의적으로 편집하는 경우가 있다는 주장이다. '페인 앤 글로리'의 경우 배급사인 ‘조이앤시네마’ 남성의 성기노출신을 상반신만 키우는 방법으로 편집해 논란이 됐다.

영화팬 류형규씨(30대) 역시 “작년에 개봉한 '페인 앤 글로리'에서도 배급사가 남성이 샤워하는 장면을 가위질한 적이 있었다”며 “극중에서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감독이 들으면 어이없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목에 ‘디 오리지널’이란 문구를 넣기도 했던 조이앤시네마는 IPTV용 판본에서도 같은 편집을 해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한국 관객들은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자전적 영화를 원본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됐다.

방송은 영화보다 더 편집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PD로 일하는 정모씨(40대)는 “방송은 영화와 다르게 시청자가 돈을 내지도 않고 무차별적으로 콘텐츠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SBS의 결정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방송국 차원에서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개신교 권사로 활동하는 이모씨(50대·여)는 “아직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동성애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과연 맞나 하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며 “원치 않는 노출을 피하고 싶은 시청자도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문제를 삼는 건지 모르겠다”하고 주장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