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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KBO 복귀' 추신수에게서 백인천이 느껴진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1962년 일본 진출한 백인천
수위타자 오르며 20년 맹활약
한국 프로야구 출범하자 돌아와
2001년 미국행 2021년 귀국
신세계와 27억에 사인한 추신수
나이부터 기록·수상까지 데자뷔
첫해 성적도 쏙 빼닮을 지 관심

'20년 만에 KBO 복귀' 추신수에게서 백인천이 느껴진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20년 만에 KBO 복귀' 추신수에게서 백인천이 느껴진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신세계 구단에 입단해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하는 추신수. 뉴스1
'20년 만에 KBO 복귀' 추신수에게서 백인천이 느껴진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백인천 전 LG 감독. 뉴스1
추신수(39)가 신세계를 열었다. 추신수는 연봉 27억원의 최고 대우로 신세계호에 합류했다. 추신수의 KBO리그 행은 39년 전 백인천과 쏙 빼닮았다. 당시 백인천은 국내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20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창단팀 MBC 청룡에 입단했다.

20년, 만 39세의 나이가 신세계호에 탑승한 추신수의 야구인생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백인천은 만 19세이던 1962년 1월 국가대표선수로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멤버 가운데는 김양중, 김성근(이상 투수), 백인천(포수), 김응룡(외야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은 3승3패로 일본에 이어 대만과 함께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은 5승1무로 우승. 당시만 해도 한국과 일본 야구의 격차는 상당했다. 백인천은 한 달 뒤 계약금 300만엔, 연봉 96만엔의 조건으로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했다.

이후 백인천은 1972년 수위타자를 차지하는 등 20년간 현역으로 뛰었다. 만 39세이던 1982년 한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백인천은 귀국을 결심했다. 백인천은 첫해 역대 KBO리그 유일한 4할 타율(0.412)을 기록했다.

추신수는 부산고 시절이던 2000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함께 뛴 선수로는 이대호, 김태균, 정근우 등이 있다. 추신수는 이듬해 계약금 137만달러(약 15억원)를 받고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다.

그리고 20년 만인 2021년 국내 야구로 복귀했다. 추신수는 시애틀에 입단한 후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했다. 백인천은 영화사로 유명한 도에이 플라어즈(현 니혼 햄 파이터즈)에 몸담은 후 포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백인천은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얻었다. 1967년엔 두 자리 수 홈런(10개)과 도루(13개)를 기록했다. 3년 후엔 홈런 18개, 도루 28개로 전성기를 맞았다. 백인천은 8번이나 두 자리 수 홈런, 도루를 기록했다.

추신수는 클리블랜드 시절인 2009년 첫 20(홈런 20개)-20(도루 21개) 고지에 도달했다. 이후 3번이나 20-20을 기록 메이저리그서 힘과 스피드를 두루 지닌 이른바 5툴(tool) 선수로 평가받았다.

백인천과 추신수는 특히 2루타를 많이 때려냈다. 백인천은 1970년(30개)과 1972년(33개) 각각 리그 최다 2루타를 기록했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283개의 2루타를 남겼다. KBO리그로 옮긴 1982년 만 39세에 23개로 최다 2루타를 기록.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16년 통산 339개의 2루타를 뽑아냈다.

백인천은 1975년 타율 0.319로 다이헤이요(현 세이부)로 옮긴 첫해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에 올랐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서 모두 수위타자를 경험한 유일한 선수다.

추신수는 2018년 한국 타자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서 21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아시아 출신 타자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다. 백인천은 일본 프로야구서 209개의 홈런을 남겼다. 추신수의 KBO리그 진출은 백인천의 한국야구 복귀 못지않게 폭발적 화제를 몰고 올 전망이다.


신세계는 추신수의 가세로 역대급 강타선을 보유하게 됐다. 추신수가 첫해 어떤 성적을 기록할 지 관심거리다. 프로야구 원년 백인천과는 차이가 나겠지만 2021년 KBO리그 최대 변수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