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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파친코

[fn스트리트] 파친코
APPLE TV+에서 방영 중인 8부작 드라마 파친코. 사진=뉴스1
1990년 초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 처음 갔을 때 도심 가장 번화한 곳에서 재미 삼아 구슬치기를 한 경험이 남아있다. 일본 법률상 도박이 아닌 놀이로 분류되는, 스트레스 해소장쯤으로 알았다. 합법이긴 하지만 일본인 대부분은 도박으로 여기는 유사 카지노라는 설명을 나중에 들었다.

파친코는 일본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파친코(Pachinko)라고 표기되지만 우리에겐 빠찡꼬, 빠찡코, 빠칭코, 파칭코, 빠친코라는 발음이 더 익숙하다. 파친코란 일본어로 새총이다. 쇠구슬을 쏘아올리는 모습이 새총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쇠구슬을 쏘아서(파칭), 데굴데굴(코로코로) 굴리는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한때 2만개가 넘는 업소가 번성, 일본 전체 관광레저산업의 30%를 차지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1만개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2011년 기준 파친코점 경영자의 국적이 한국 50%, 일본 30%, 중국 및 대만 10%, 북한 10%라는 자료도 나왔다.

2000년대를 기준으로 파친코 업계 전체의 최소 60%, 최대 90% 정도를 재일 한국인이 운영했다. 민족차별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기 힘들었던 재일 한인들이 일본인이 하나둘 떠난 파친코를 인수해 자리 잡은 것이다. 파친코 중독이 사회문제가 될 때마다 재일 한인 탓으로 힐난받았다. 우익성향 사이트 등에서는 파친코를 '조선도박' 혹은 '조선 구슬넣기'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1000억원이 투입된 애플TV플러스의 8부작 드라마 '파친코'가 공개되면서 '애플이 제작한 최고의 쇼'(파이낸셜타임스), '눈부시고 따스한 한국의 서사시'(BBC) 등 외신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일제강점기 부산을 떠나 일본에 정착하고,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4대의 역경을 그렸다. 젊은 세대에겐 잊혀진 일본의 잔악한 식민지배와 한인의 기구한 해외이주사가 미국자본에 의해 본격 재조명된 것이 계면쩍을 뿐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