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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작별한 두 작가… 마음 한켠 봄의 자리 비워두세요 [책 대 책]

쾌활한 할머니 모지스, 사유를 즐기는 철학자
각자의 삶의 언어로 내면에 깊은 울림 전해

겨울과 작별한 두 작가… 마음 한켠 봄의 자리 비워두세요 [책 대 책]
인생의 봄에는 할일이 참 많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수오서재
겨울과 작별한 두 작가… 마음 한켠 봄의 자리 비워두세요 [책 대 책]
조용한 날들의 기록 / 김진영 / 한겨레출판사
새로운 계절은 맞이하는 길목에 서 있는 이즈음, 느직하게 물러나는 추위를 겪을 때면 포근함을 쉬이 내어주지 않는 날씨가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뭇가지에 움터 올라온 새싹은 새로운 시간이 또 한번 우리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깨운다. 기나긴 겨울과 작별하고 다가온 봄을 맞이하는 자리에 마음의 온화함을 피워줄 화가와 철학자의 책 두 권을 소개한다.

먼저 소개할 책은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수오서재 펴냄)이다. 저자인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모지스 할머니'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친근하고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라 꼽히는 국민화가다. 평생을 시골 농장에서 쉴 새 없이 일했던 모지스 할머니는 70대 중반에 관절염으로 자수를 놓기 어려워지자 동생의 권유로 붓을 들었다. 따뜻한 색감과 정겨운 대자연의 풍경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에게 세상은 열광했다.

그는 70대 중반부터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600점의 작품을 남기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강연이 방송을 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책은 모지스 할머니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입담을 살펴볼 수 있는 잠언집이다. 방송과 신문, 편지 등에 실린 할머니의 목소리가 짤막한 문장으로 각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모지스 할머니의 책을 번역하며 국내에 소개한 바 있는 류승경 번역가가 이번 책의 출간을 위해 신문 아카이브와 라디오, 편지에서 할머니의 말을 집요하게 직접 그러모았다. 번역가와 출판사 편집부의 할머니를 향한 사랑이 모여 오로지 한국에서만 할머니의 말들을 한데 모아 만나볼 수 있는 번역문 모음집이 탄생했다.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철학과 미학을 전공하고 강의했던 철학자의 사색을 담았다. 김진영의 미발표 산문집인 '조용한 날들의 기록'(한겨레출판 펴냄)이다. 5년 전 작고한 저자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블로그, 페이스북, 개인 노트 등에 적어냈던 1348개의 단상을 엮었다. 그의 일기 산문인 '아침의 피아노', '이별의 푸가', '낯선 기억들' 그리고 '상처로 숨쉬는 법'에 이어 마지막 순서로 출간된 책이기도 하다. 각 연도가 목차를 이루어 해마다 1월부터 12월까지 단문과 장문이 어우러져 담겨 있다.

그의 기록에는 강의를 준비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소소한 일상에서도 느낀 사회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거리의 전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 읽는 동안 철학자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하다. 그는 때로는 적막한 탄식을, 때로는 잠잠한 감상을 뱉는다.
간결한 문장에서조차도 이 책에서는 그가 오랜 시간 다듬어온 고요한 생각이 느껴져 그의 글을 한 걸음 한 걸음 들여다보며 우리의 내면에 울림이 전해져 온다.

쾌활하고 거뜬한 삶의 태도를 지닌 화가와 맑고 조용한 사유를 하는 철학자가 각각 스스로의 삶에서 우러나온 언어로 책을 가득 채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 사람을 이루고 구성하는 말들이 결국은 그 사람만의 리듬을 이루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화가와 철학자의 내면 속 문장들을 우리 안에 읊고 새기면서 그들의 언어가 배어 든 봄을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이주호 교보문고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