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北 비핵화 목표가 결코 흔들려선 안 되는 이유 [fn기고]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최근 간헐적인 북핵 보유 허용 공존 목소리, 수많은 위험성 내포
 -국제적 비확산체제 와해의 단초, 핵 보유 후보군에 나비효과
 -北핵 보유 용인이 위협 낮춘단 건 논리비약·이상적 희망 불과
 -핵군축 대상 인정은 핵보유국 인정 전제, 그 자체가 위험성 내포
 -北 핵 보유국 인정, 비핵화 목표 포기는 규칙기반 국제질서 붕괴 단초
 -北 인지전에 한국 군사대비태세 약화, NCG 확장억제 동력 잃을 우려
 -北 기회다 오판할 가능성, 北 비핵화 고수·고강도 연대 아키텍처 펼쳐야

[파이낸셜뉴스]
北 비핵화 목표가 결코 흔들려선 안 되는 이유 [fn기고]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최근 들어 조야에서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요구하지 말고 어느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토록 허용하고 대화를 통해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공존 가능성을 과대포장 하는 등 수많은 위험성을 외면한 채 일시적 공존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는 북한을 상대로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국제사회의 목표인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사실상 국제적 비확산체제 와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체제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지목되어온 북핵을 국제사회가 스스로 인정하는 파국을 초래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핵무기를 보유할 의도가 있는 잠재적 후보군에게 북한의 핵무장화 사례가 핵무기 보유의 새로운 공식으로 자리를 잡게 하는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면 위협이 낮아질 수 있다는 사고는 논리적 비약이자 이상주의적 희망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절대무기로서의 핵무기 속성을 간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개의 핵무기를 10개로 줄이거나 100개의 핵무기가 통제될 수 있도록 가시화하더라도 핵무기가 내재하고 있는 재앙적 파괴력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단 한 발의 전술핵이라도 사용되면 한반도는 회복할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군축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해 주면 위험이 감소할 것이란 이야기는 절대무기의 봉인을 해제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셋째, 북한을 핵군축의 대상으로 인정해 주는 것 자체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핵군축은 이미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국가끼리 핵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군비통제 체제를 구축하여 핵무기 사용의 오판과 위험성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NPT 체제 이전에 핵무기를 보유하여 공식적 핵보유국이 된 미국과 소련 간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다. 하지만 북한은 현재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중간과정을 그냥 패스하고 핵군축으로 직행한다면 핵군축은 핵보유국 인정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핵군축의 여건만 조성된다면 북한은 이러한 맹점을 역이용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핵군축 협상을 위해 단 한 번의 실무회담이라도 열리게 된다면 혹시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북한은 자신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기에 회담이 개최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 자명하다.

넷째, 비핵화 목표 포기는 규칙기반 국제질서 붕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규칙기반 질서 약화 우려가 높아지는 이유는 ‘제도’가 아닌 ‘힘’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제가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강국 지위를 부여하고 그 역할을 요구하자는 것은 핵무기로 위협을 가하고 있으니 요구를 들어주자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이는 힘만 있으면 기존의 규칙을 깰 수 있다는 공식을 국제사회가 스스로 만들어주는 모양새가 된다. 따라서 규칙기반 질서 유지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고 북한에 핵보유국 지위를 제공하면 북한의 인지전에 말려들고 나아가 한국의 군사대비태세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우선 북한 비핵화 목표 포기 자체로 핵협의그룹(NCG)에 기반한 한국형 확장억제는 그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NCG는 한국이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해 주는 대신 미국은 한국과 공동 기획 및 공동 실행 체제를 구축하여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이 가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공식 핵보유국으로 등극하면 한국만 비핵화 의지를 지속할 수만은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고 ‘공동 기획/실행’도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기에는 비대칭성이 심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강의 목소리가 높아지겠지만 기존 한국형 3축 체계는 재래식 무기 기반이라는 점에서 핵보유국을 상대로 재래식 무기로만 대응하는 한국군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러한 불균형적 핵안보를 역으로 이용하여 한국군을 상대로 핵강압을 지속할 것이고 이는 한국군의 의사결정체제와 한국군의 전투의지에 부정적 영향을 입히도록 인지전과 연계시켜 강도를 높일 것이다. 이러한 피로감이 누적되면 재래식 무기에 기반한 군사대비태세는 약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간간이 들려오는 비핵화 목표 포기 목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이런 목소리를 반기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굳이 이야기 안 해도 외부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주라고 나서주니 전략적 기회가 도래하고 있다고 오판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전략적으로 잘 이용하여 도발과 핵강압을 높여서 핵보유국이 되려는 최종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북핵 거부’ 접근법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를 경청하고,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안보를 이루는 아키텍처를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범정부적 노력으로 북한 비핵화 목표를 고수하면서 동시에 동맹국 및 유사입장국과 구축된 고강도 연대를 잘 활용하여 그 목표 공유를 지속할 수 있도록 외교전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