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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직업인이 아닌 '의사선생님'

[재팬 톡] 직업인이 아닌 '의사선생님'
김경민 도쿄특파원
전공의들이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으로 병원을 떠난 지 3주째가 넘어가고 있다. 전공의에 더해 서울대 의대 교수들까지 전원 사직을 예고했다. '강대강' 국면은 계속되고 도통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올해 의대정원을 지난해보다 19명 늘어난 9403명으로 결정했다. 현재 3058명인 한국의 3배를 웃도는 규모다.

일본만 그럴까. 의대정원이 8000~9000명가량인 독일과 영국은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5배에 달하는 1만5000여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은 1960년대 의대정원이 한국과 비슷한 3000명 수준이었으나 인구 증가로 꾸준히 정원을 늘려 1981년에는 최대 8280명까지 신입생을 뽑았다.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 늪에 빠지고, 의사가 공급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의대정원을 2007년 7625명까지 줄이기도 했다.

이때 일본 의료계에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터졌다. 만삭의 임신부가 구급차에 실려 이송됐지만 여러 병원에서 거부당했고, '응급실 뺑뺑이' 끝에 결국 사망한 것이다. 전국적인 분노가 들불처럼 번졌고, 의사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의대 증원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일본은 2008년 168명 증원을 재개하며 최근 17년간 의대 정원을 1778명(23.3%) 늘렸다. 지역의사 확대정책도 동시에 진행해 지난 10년 동안 의사가 4만5000명 증가했다.

그럼에도 지방의 의사인력 부족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 지자체들은 의대 증원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원이 줄면 지방으로 오는 의사 수가 더 적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정부 역시 여전히 의대정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의료붕괴를 막으려면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며 오히려 의사와 의대생이 서명하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2035년 의사 수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의사인력 1만명 확충안(의대 증원 2000명×5년)을 발표했다. 수십년간 업계와 대화하고 천천히 의대정원을 늘려온 일본과 비하면 너무 급한 감이 있다. 일본은 의료개혁은 백년을 내다보는 대업으로 보고 해마다 지역수요에 맞춰 100명 안팎의 인원을 천천히 증원해 왔다. 일본과 우리의 상황이 다르지만 일본이 정원을 늘리는 과정에서 왜 일본 의사회가 적극 찬성했는지 우리 정부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

뜻하지 않게 현장을 떠나 모처럼 여유가 생긴 우리 의사들도 졸업장 속에 적힌 '제네바 선언'을 다시 읽어봤으면 한다. 의사로서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환자의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그 다짐과 사명감이 아직도 유효한지 각자 확인해볼 때다.

"현재 우리나라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해외 사례처럼 단순히 임금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의사 부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를 전제로 돈을 더 벌겠다는 것"이라는 듣기도 민망한 말들이 왜 나오게 됐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은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군 병원을 개방하면서 '환자 진료가 의료진의 당연한 책무인 만큼 관련 사안을 외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대전병원 관계자는 언론에 "군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비단 환자를 치료하고 생명을 지키는 일이 군의 책무여서만일까. 군인 이전에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테다.


고된 현장에 있다 보면 의사들도 처음 의사가 될 때의 마음가짐이 흐려질 수 있다. 직업인으로서 내 밥그릇부터 챙겨야 환자 생명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단순한 직업인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