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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운의 혁신탐구] 中企 수출지원, 패러다임 전환 필요

총량중심 지원서 벗어나
中企 수출채산성 높이고
해외 직접투자 지원해야

[임채운의 혁신탐구] 中企 수출지원, 패러다임 전환 필요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수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우리 중소기업이 과밀과당 경쟁에 시달리며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내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4%로 세계경제 성장률 평균보다 낮다.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내수위축이 성장률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수출은 회복 국면을 보이며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올해도 저성장 기조가 이어져 경제성장률은 2%대 초반으로 전망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이 성장사다리에 올라 타려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길밖에 없다.

정부도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중소기업 수출지원 기관은 중진공과 코트라를 비롯해 업종별·지역별 진흥원을 망라하며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수출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오랫동안 수출중소기업 수를 늘리고자 했지만 10만개를 넘지 못한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 비중은 감소세를 보인다. 총수출액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 수출액 비중은 2020년 19.7%에서 2023년 17.7%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수출이 부진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중소기업이 수출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 많고, 이를 독자적으로 해소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수출중소기업은 일단 수출채산성 저하에 봉착한다. 수출은 시장만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도 확대되는 것이다. 해외에서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등 개발도상국 기업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요즘 초저가로 파란을 불러일으키는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와 같은 중국 기업과 정면 승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수 판매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인증, 통관, 운송, 보험, 환전 등의 비용이 추가되는 반면 가격은 낮아지니 수출채산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수출바우처 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의 수출 마케팅 비용을 보전해 주지만 수익성을 높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은 주로 외형적 수출액을 늘리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다. 사절단, 상담회, 전시회 등으로 중소기업이 여러 나라의 해외 바이어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주력한다. 수출 초보 중소기업에는 필요한 지원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 유력한 진성바이어를 만나기 힘들다. 단체미팅에서 짝을 만나 결혼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중소기업은 넓은 세계시장을 얇게 떠먹으면 절대 안 된다. 한 국가 시장을 표적으로 선정하고 여기에 집중해 깊게 파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려면 그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 현지의 유통채널과 소비자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직구 앱이 반품과 환불조치가 미흡하다고 불평하지 않는가. 물건은 판다고 끝이 아니다. 사후관리(AS)와 교환·환불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지에 투자해야 한다. 더 나아가 현지에 생산공장을 투자해야 할 때도 있다. 요즘은 어느 나라이건 외국에서 만든 상품을 일방적으로 수입만 하지 않는다. 현지화 요건을 요구하며 자기네 나라의 경제와 고용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외국 기업의 자국 투자를 요구하는 나라로 미국이 가장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이 마케팅이나 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인프라를 현지에 구축하려면 선행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에 대한 정부 지원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빈약하다. 주로 국내 모기업을 통해 해외 직접투자를 우회지원하는데 모기업의 한도가 다 차서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지원해 주지 못한다.
이제는 총량 중심의 수출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의 수출채산성을 높이고 해외 직접투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소기업 수출성장은 해외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죽음의 계곡'을 얼마나 잘 건너도록 지원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수출 대기업도 한때는 출혈수출로 고전했지만 이를 정부 지원 덕분에 극복,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