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선동 휘둘린 브렉시트
英 혹독한 대가 치르고 후회
국가 중대결정 신중히 판단
노동일 주필
보리스 존슨. 2019년 7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영국 총리로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 중 한명이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에서 영국 국민은 51.9%로 EU탈퇴(Leave)를 지지했다. EU탈퇴 명분은 영국의 주권 회복, 즉 EU의 간섭과 규제에서 벗어나 완전한 주권을 되찾자는 이유가 컸다. EU 분담금 감축, 이민문제 통제 등도 영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상당 부분 과장이나 근거 없는 선동이었다. 존슨 총리는 2019년 12월 총선에서 '브렉시트 완수(Get Brexit Done)'를 앞세워 압승을 거두었다. 2020년 1월 브렉시트에 성공한 것은 존슨 총리 등 강경파의 역할이 컸다.
'주권 회복' 등의 환호가 환멸로 바뀌는 각성의 시간은 빨랐다. 브렉시트 후폭풍으로 2017년 이후 글로벌 금융회사 439곳이 1조파운드(약 1650조원)가량의 자산을 영국 이외 지역으로 이전했다. EU 국가 한 곳에서만 설립인가를 받으면 나머지 국가의 허가가 필요 없는 '패스포팅'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브렉시트 이후 국가적 생산성 손실 규모는 290억파운드(약 45조원), 가구당 1000파운드(약 155만원)에 이른다. '브렉시트를 후회한다(Brexit+regret)'는 뜻의 '브레그렛(Bregret)'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브렉시트를 선동했던 강경파 정치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부 인사들이 비밀리에 EU 측과 협상을 벌인다는 소문만 들린다. 무책임한 선동과 감정에 휩쓸려 국가의 명운을 결정했던 국민들의 짙은 후회만 영국을 감싸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공식화하려는 모양이다.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전작권 환수를 우리 측 카드로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규백 국방장관 후보자는 15일 인사청문회에서 "이재명 정부 임기 중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협상용' 보도를 일축했고, 대통령실은 안 후보의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추진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안 후보자의 해명도 있었다. 아니 땐 굴뚝의 연기인지 확실치 않지만 전작권 전환 '의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의원 시절 "전 세계에서 독립국가인데 군사주권을 다른 나라에 위탁하거나 공유하는 나라가 우리 빼고 어디 있느냐"고 발언한 바 있다. 전작권 문제를 군사 '주권'의 문제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미)연합군의 특성상 전시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미연합사의 지휘를 받는 것일 뿐 주권과는 관련이 없다. 국군통수권은 여전히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있고, 한미연합사는 양국 대통령의 합의에 따른 결정을 수행할 뿐이다. 전작권을 가진 한미연합사의 첫번째 존재 의미는 전쟁 억지력이다. 전쟁 시 미군 개입이 불가피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연합사 해체-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미군이 제공하는 역량 덕에 그동안 우리는 경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안 후보는 전작권 전환에 따른 군사비 증가폭이 "21조원 정도"라고 했다. 반면 200조원으로도 모자란다는 주장도 있다. 무기와 탄약 비축, 미군이 제공하는 감시·정찰 자산 등을 갖추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고 한다.
현재의 전작권 체제가 불변일 수는 없다. 조건이 맞으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최대한 신중해야 마땅하다.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감정적 혹은 진영논리에 따른 대응은 금물이다. 브렉시트는 먹고사는 문제이다. 잘못되어도 후회로 그칠 수 있다. 영국과 EU의 관계 재설정이나 재가입도 가능하다. 전작권 등 안보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이다. 그만큼 국가의 명운이 달린 결정이다.
감정이나 여론몰이에 따른 결정이 있어서는 안된다. 천문학적 군사비를 지출할지 대신 경제에 투자할지 실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의지'가 있다면 사실에 바탕을 둔 정확한 설명과 함께 국민의 동의를 먼저 구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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