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웅필 '한사람으로서의 자화상-실'
변웅필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실' 눈썹도 머리카락도 없다. 실뜨기를 하고 있는 한 사내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을 마주하고 작품명을 보자니 '작가의 자화상인가' 싶다가도 그렇게 단정짓기엔 영 석연치 않다. 눈썹, 머리카락 등 형태는 물론이고 표정마저 제거하니 어느 한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는 '그냥 사람'에 가까워 보인다. 작가는 왜 이토록 자신을 ..
2017-04-03 14:12:06
전뢰진 '선동'
돌을 쪼아 다듬고 이미지를 찾아내는 작업은 오랜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 커다란 돌덩이가 사람의 얼굴이 되고 그 속에 미소를 담아내는 일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기도 하다. 작가 전뢰진은 망치와 정으로 돌을 쪼아 만드는 전통적 조각방식을 고집한다. 신라시대 석공이 수천, 수만번 망치를 두들겨 탑에 정성을 담아냈듯, 전뢰진은 우리 전통성과 맥을 유지하며 그 때 그..
2017-03-23 14:30:23
김호연 '웃음꽃'
그림이 웃고 있다. 봄 햇살을 가득 품은 꽃들이 있다. 두 마리 나비가 날갯짓하며 그 옆을 빙빙 맴돈다. 꽃잎은 흡사 미소를 짓는 듯하다. 꽃수술들은 각자의 하늘을 향해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으며 꽃받침은 활짝 미소를 머금은 사람의 입모양 같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꽃들은 술래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다가섰다 멈췄다를 반복하는..
2017-03-20 17:19:36
쿠사마 야요이 '호박'
1959년 뉴욕 브라타갤러리의 벽면은 흰색의 그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무한히 계속되는 그물망은 현기증이 나게 하면서도 묘한 마력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동양의 한 여성 화가가 펼쳐낸 이 작업에 당시 평론가들은 최상의 찬사를 보냈다. 쿠사마 야요이(88)는 정신병이 있다는 사실로 더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작가다. 그의 정신병력을 듣고 나서 작품을 보면 대부분 "..
2017-03-16 17:25:16
장욱진 '산속의 집'
첩첩산중. 해와 달이 나란히 뜨고 지는 골짜기. 어딘가엔 어쩌면 호랑이도 살고 있을 것 같은 두메산골 한가운데 집 한 채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세 가족은 할 일 없이 마루에 나란히 앉아 건너편 물가 섬과 같은 뭍에 솟은 한 그루 소나무와 그 위에 앉은 까치를 안온히 바라본다. 정적과 고요 속에 마주하게 되는 평온한 일상. 어쩌면 분주한 우리네 삶이 마음 한켠에서 ..
2017-03-13 17:21:40
장욱진 '독'
1949년에 제작된 '독'은 신사실파 제2회전에 전시한 작품으로 당시 장욱진이 '독'을 포함, 유화 13점을 전시했는데 구도와 도상의 상징성으로 전시작품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을 살펴보면 8호 크기의 화폭에 황색으로 메우고 전면에 항아리를 가득 차게 그려 넣은 것으로 좌측 상단의 여백엔 나무 한 그루를, 하단 중앙엔 새 한 마리를 배치했다. 이 외에 형..
2017-03-09 16:54:29
오세열 'Untitled'
오색 단추들이 별이 되어 밤하늘을 장식하고, 소박한 꽃병이 그 우주 중간에 떠 있다. 반대편 화면에는 뾰족한 송곳으로 주문을 외듯 그어 내려갔을 것 같은 곡선이 소용돌이치듯 이어진다. 마치 아이의 그림일기 같은 이 작품은 고희를 훌쩍 넘긴 어느 대가의 '제목 없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추상과 반추상 사이를 넘나들며 어떠한 정의도 내려지지 않는 독보적 화풍으로 국..
2017-03-06 17:14:58
운초 박기준 '풍속도'
조선 말기의 화원을 지낸 운초 박기준의 작품이다. 운초는 현재 전하는 작품이 많지 않으나 당시 산수와 화조에 특장이 있고 필치가 정교했다는 화평이 전하는 인물로, 이 작품에는 술상을 든 여종이 남녀 신발이 놓인 방문 앞에 선 모습을 그려 놓았다. 여성의 음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계류를 우측 상단에 두고 남정네의 급하게 벗겨진 신발을 가지런한 여인네의 꽃신과 함..
2017-03-02 17:17:42
서윤희 '기억의 간격-비망(秘望)'
두꺼운 한지 캔버스에 마른 나무 껍질들이 더덕더덕 화면을 채웠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메말라버린 거죽과 같은 껍질. 처음엔 새순과 함께 연한 모습이었겠지만 뜨거운 햇빛과 칼바람을 맞으며 거칠어지다 결국 떨어져 나왔을 테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져 나온 그 나무의 흔적들은 결국 언젠가는 또 자연 속으로 사라져간다. 시작과 끝. 유한한 인간의 삶 또한 다르지 않..
2017-02-27 17:12:17
쌀 부대종이에 담긴 농촌의 현실
계곡의 얼음 밑으로 물이 흐르고, 산수유 가지가 노란 꽃망울을 머금으면 비로소 우리는 봄이 옴을 느낀다. 다시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차가운 날씨도 꽃을 시샘하는 것이라 위로하며 결국은 오고야 말 봄을 기다린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그리고 결과 맺음을 위한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허리를 굽혀 하나씩 모를 심어가는 모내기 작업은 가을까지 이어질 노동의 시작이..
2017-02-23 17:44:01
김동유 '마릴린 먼로(존 F 케네디)'
강렬한 오렌지색의 초상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만인의 연인'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다. 먼로의 얼굴을 구성하는 촘촘한 픽셀(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엔 전혀 다른 인물이 들어가 있다. 다름 아닌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다. 케네디의 이미지는 약 500개의 점으로 반복돼 있고, 그것은 다시 행복을 머금고 있는 먼로의 얼굴로 형상화돼 있다. 일국의..
2017-02-20 17:23:56
오윤 '춤'
판화가 오윤(1946~1986)은 서울대 미대 재학 중인 1969년 시인 김지하, 평론가 김윤수 등과 함께 예술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모토로 '현실동인'전을 조직했으나 교수들과 당국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졸업 이후 짧은 군 복무(지병인 위장병으로 의병제대했다), 테라코타 벽화작업과 전돌 공장 운영, 목판화로 한 책표지와 삽화 작업, 선화예고 미술과 강사 등으로 1970년..
2017-02-16 17:25:12
신사임당 '초충도'
집 한구석 마당에 꽈리가 붉은 열매를 맺었다. 키는 작지만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오른 꽈리를 구절초가 감싸안고 잠자리와 나비가 어느새 날아든다. 치열했던 여름을 지나 열매를 맺는 시절의 변화를 푸른빛 감지(紺紙)에 그려낸 이는 조선시대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1504~1551)이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다. '현모양처'의 아이콘으로 각인돼 있지..
2017-02-13 17:31:24
이우환 '바람'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81)은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연작을 통해 절제되고 엄격한 추상양식을 보여줬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보다 자유분방한 추상의 세계로 이행해 '바람' 연작을 선보였다. 작가는 자기억제와 개념추구에 한정시킨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연작을 다년간 제작하면서 절제와 완벽의 절정을 이룸과 동시에 이념과 신체활동성의 한계를 ..
2017-02-09 17:18:27
전병현 '정물'
두 개의 새하얀 달항아리 위로 매화꽃이 무심히 꽂혀 있다. 화폭을 가득 채운 매화는 언뜻 보면 겨울의 끝자락 나무에 내려앉은 눈꽃송이와 닮아 있기도 하고, 봄날 바람에 흔들려 내리는 꽃잎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화면 곳곳 춤추듯 자유로이 흐트러져 있는 꽃잎들은 굵직하고 단단한 질감으로 바로 손에 잡힐 것 같은 생명력을 뽐내며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 따뜻했던 ..
2017-02-06 17:10:04
청자도철문정형향로
고려시대에 고급 청자향로는 일반인이 소장할 수 없는 기물이었다. 이는 고려왕실이 건립 초부터 예제개혁(禮制改革), 즉 선왕의 은덕을 구하고 후대에 복됨을 바라는 종묘제를 확립하며 향로를 왕권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기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상징일 뿐이지만 고대 중국 왕조인 하(夏), 상(商), 주(周) 삼대부터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왕권을 상징하는 데 ..
2017-02-02 17:42:47
운보 김기창 '학문매병'
상서로움을 지닌 동물로 여겨지는 학은 예부터 많은 화가들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십장생 중 하나로 장수를 의미하는 학은, 자연과 어우러져 일생을 살며 고고한 기품을 유지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500원 동전에도 비상의 나래를 편 학의 모습이 담겨있으니, 일상에서 학을 보기란 쉽지 않으나 실상 우리의 삶에 언제나 함께하는 동물이기도 하다.매병에 학이 ..
2017-01-26 14:34:35
이동수 'Flow Bowl'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찻잔 하나가 빛을 발하고 있다. 세월을 품은 듯, 잔 표면이 거칠하다. 마치 추운 겨울, 서리 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을 것 같은 정감 어린 그릇이다. 그릇은 객(客)의 언 손을 녹이고, 객이 다시 스스로를 위안하며 떠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지난날 누군가의 온기가 찻잔을 데웠던 것처럼 오늘은 또 다른 누군가의 온기가 ..
2017-01-23 17:23:29
김환기 '12-V-70 #172'
수많은 점들이 하나의 화폭에 스며들어 한 편의 시같이, 때로는 음악같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전면점화 작품에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평생을 살아낸 작가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해에는 그의 점화 작품이 여러 차례 한국 경매시장의 최고가 기록을 깼고, 올해도 대규모 회고전이 예정돼 있는 등 김환기에 대한 관심은 ..
2017-01-19 16:56:38
이대원 '소나무'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부모의 반대로 법학을 전공해야 했던 화가 이대원(1921~2005)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를 이뤘다. 선명한 색채와 경쾌한 붓 터치로 가득한 이대원의 화폭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이 포착돼 있다. 대담한 구도로 단편화해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놓쳐버리고 마는 일..
2017-01-12 17:41:22
유선태 '말과 글-책 위에서의 명상'
인간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것 같은 산중, 두 줄기 하얀 폭포가 보이고 거대한 책 한 권이 가로 놓여있다. 걸리버 여행기 속 소인이 이곳에 튀어나온 걸까. 흡사 미니어처 사이즈의 일상의 물건들이 공중에 둥둥 떠 있다. 마치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 같은, 꿈에서나 볼듯한 초현실적 풍경을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마그리트'로 국내외에서 호평..
2017-01-09 17:15:41
안중근 '경천'
경천(敬天). 하늘의 이치에 따라 국가와 국민이 스스로 본분에 맞게 도리를 지키고 양심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 집행을 앞둔 1910년 3월 어느 날,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작성한 것임에 글귀에 깃든 엄중한 외침은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일제의 침략과 학살에 항거하다 후손들을 위해 서른살의 짧은 인생을 형장의 이슬로 마감한 ..
2017-01-05 17:05:18
사석원 '닭'..文·武·勇·仁·信의 상징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해가 저물고 있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힘찬 울음소리처럼,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닭을 그린 그림 한 점을 소개한다. 열두 띠에 속하는 닭은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 다섯 가지 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닭의 볏은 문(文)을, 날카로운 발톱과 적에게도 굴하지 않는 용기는 무(武)와 용(勇)을, 먹이는 다른 닭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동이 터오면 울음..
2016-12-29 17:35:16
김덕기 '가족-함께하는 시간'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풍경이 있다. 방금 전까지 가족들이 머무른 듯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벽난로가 있는 집. 잠시 내릴 줄 알았던 눈이 끊임없이 오니 반가워서일까. 온 가족이 뛰어나와 만든 눈사람은 그들의 표정을 닮았다. 행복을 갈망하는 가족의 염원과 같이 원형의 '점'들이 화면 안에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아크릴물감을 사용해 강렬한 이미지의 점묘법으로 완성..
2016-12-26 17:41:05
나라 요시토모 '무제'.. 샐쭉한 표정 뒤에 감춘 불안
눈꼬리를 치켜뜨고 입을 샐쭉거리는 그림 속 소녀는 반항심과 더불어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얽혀있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양손의 두 번째 손가락 끝을 마주 대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불안감과 동시에 내면에 감춰진 나약함마저 느껴진다. 순수한 어린이와 인간의 사악함을 가까이 붙여놓은 듯한, 소위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로 불리는 나라..
2016-12-22 17:08:49
권순철 '예수'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 권순철 작가(72)는 지난 세월 동안 한국인의 얼굴을 주제로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마지막 순간의 고통이 아로새겨져 있는 예수의 얼굴에 천착했다.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서른한 번째 개인전 '영혼의 빛-예수'다. 권 작가가 예수의 얼굴을 본격적으로 그..
2016-12-19 17:36:52
유영국 'Work'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영국(1916~2002)은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창립 멤버로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을 리드하면서 '산'을 모티브로 선, 면, 색채로 구성된 비구상적 형태로서의 자연을 탐구했다. 1930년대 일본 유학 시절부터 1999년 건강상의 이유로 절필할 때까지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에도 흔들림 없이 일관된 작가적 신념과 조형 의지로 엄격..
2016-12-15 17:20:21
김덕용 '옛날의 그 집-복사꽃'
마을 어귀 소박하게 자리 잡은 고즈넉한 한옥. 오랜 세월을 견딘 창 너머로 바람 소리가 들리는 풍경이 있다. 돌담에 접한 마당 모서리 화단엔 복사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다. 꽃잎이 흔들릴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마당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한국적 미와 정서로 오랜 세월 꾸준히 사랑받으며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 주목하는 작가 김덕용의 신작 '옛날의 그 집..
2016-12-12 17:26:14
현재 심사정 '촉잔도'
우뚝 솟은 바위산의 기암괴석, 봉우리에서 쏟아지는 폭포, 절묘하게 걸쳐진 수목들이 절경을 이루는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작품으로 마을과 인물, 산세가 적절히 어우러져 명쾌한 화면을 선사한다. 골짜기마다 운무가 드리워져 앞길은 험준한데 귀한 나리가 마을로 향하는지 행차는 봉우리를 돌고 돌아 선두가 마을 어귀에 다다른 모양이다. 원래 '촉잔도(蜀..
2016-12-08 17:04:49
김창열 '물방울'
한 화면 속에 물방울과 그 궤적이 함께 자리한다. 물방울은 그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소멸된 흔적과 함께 놓여 있기에 존재 의미를 더한다. 물방울 하나하나의 존재는 배경에 스며들며 다른 물방울들과 함께 합쳐지고 하나가 된다. 물방울이 스며들어 짙은 얼룩이 되어버린 이 자리는 물방울이 사라져 자취를 감춘 흔적이며, 동시에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는 ..
2016-12-01 17:42:29
안말환 '꿈꾸는 나무'
"불안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나의 나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숲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한 당신의 호흡이 되고자 한다." 안말환 작가(59)의 꿈은 거대하지 않다. 그가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나무들은 불완전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작은 안식처가 되기를 희망한다. 또 그들의 울퉁불..
2016-11-28 17:45:22
손상기 '이른 봄-호외'
'한국의 로트렉'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작가 손상기(1949~1988)는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극심한 가난과 척추만곡증이라는 신체 장애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작업에 매달려 1500점에 달하는 드로잉과 유화 작품을 남겼다. 1979년 서울로 상경한 그는 도시 하층민들의 처절한 삶을 목격하고, 당시 민중미술 편에 선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 비판의식에 눈뜨게 된..
2016-11-24 17:41:00
윤형근 '무제', 스밈과 번짐… 절제된 색의 울림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사조인 '단색화'는 국제무대에서 조명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단색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윤형근(1928~2007)의 작품 역시 국내외 전시가 활발하게 기획되며 주목받고 있다.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투박한 천 위에 물감을 묻힌 귀얄붓을 여러 차례 그어내린 그의 화면은 담백하고 담담하다. 색면 위에 색면이 쌓이고, 스미고 번진 화..
2016-11-17 17:42:11
최병소 '무제'.. 지우고 지우고, 채우고 채웠다
대구의 작업실에서 만난 최병소 작가(73)는 신문지에 막 시작한 작업이라면서 작품을 내보였다. 가는 연필 선과 아직 마르지 않은 볼펜 선이 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작가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필과 볼펜으로 신문을 지워왔다. 신문용지, 잡지, 상자 등 소재의 범위는 다양해졌지만 작가의 반복적인 신체 행위만으로 소재를 빼곡히 채운 볼펜과 연필 선들은 여전했다..
2016-11-14 17:27:11
겸재 정선 '고사인물도'.. 옛사람의 정취
옅은 채색과 담담한 필선으로 당나라 시인 이섭과 이태백의 시제를 화폭에 구현한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이다. 한 점은 당나라 시인 이섭의 시 '제학림사승사(題鶴林寺僧舍·학림사 요사에서 짓다)'를 그려낸 작품으로 절간을 찾은 고사의 모습을 표현했다. 중은 반가운 손님을 향해 안채로 안내하는 손짓을 취하고 고사는 데리고 온 시동과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모습인..
2016-11-10 17:15:47
이소정 '눈밭의 비겁자'
이소정의 추상적 이미지를 맞닥뜨릴 때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아도 대체적으로 신체기관, 자연물, 돌연변이 등의 유기체를 연상하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자연발생적 추상 이미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여지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며 제작 과정을 다시 논리적인 계획으로 재구성하거나 최소한의 매뉴얼을 통해 화면에 단서..
2016-11-07 17:50:47
남관 '무제'
전쟁의 여파가 남아있던 1950년대, 프랑스로 떠난 한국 작가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꽃피운다. 그 선구자적 역할을 한 작가가 바로 남관(1911~1990)이다. 남관은 프랑스로 건너간 첫 한국 화가이자, 프랑스 화단에서 위업을 이룬 제일의 작가이기도 하다. 1954년 도불 후 삶과 인간에 대한 단상들을 추상의 화면으로 풀어내었고, 1966년 망통 국제회화비엔날레에서 대..
2016-11-03 18:08:17
부지현 '균형과 불균형'
지하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에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와 마주한 것은 부지현 작가의 '균형과 불균형'(2016년)이 빚은 빛과 어둠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어둠에 익숙해지자니 즉석사진 속 이미지가 또렷해지듯 어둠을 뒤로한 푸른 빛의 구조물이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LED 조명과 액체가 담긴 아크릴 실린더, 실린더를 받친 스피커 부품이 하나의 유닛을 이루어 천장..
2016-10-31 19:12:42
신학철 '달밤'..마음의 안식처, 고향
한국 근현대사의 트라우마와 끈질기게 대결해온 작가 신학철(72)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언급된다. 1970년대 한국아방가르드협회 활동을 시작으로 1985년 김정헌, 오윤, 임옥상 등과 함께 한국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를 구축했고 1987년 '모내기' 그림 사건으로 한국 미술사에서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민주화운동과 맥을 함께해온..
2016-10-27 17:58:06
좌혜선 '정글 2'..희미한 빛과 짙은 그림자
몇 해 전 시작된 홈인테리어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소수의 '사람답게 살기' 프로젝트인 줄만 알았던 집안 꾸미기가 실은 전 국민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물론 허리띠 졸라매고 몇 년만 고생하면 훨씬 더 좋은 동네의 넓은 공간에서 살 줄 알았던 희망이 먼 미래에 혹은 어쩌면 이번 생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좌절로 바뀌는 시점과 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은 역설..
2016-10-24 18:11:46
박수근 '귀로'..고목과 오누이의 생명력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1914~1965)은 18세가 되던 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로 데뷔했다. 데뷔 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자 했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 이어져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집'이 특선을, '노상에서'가 입선하면서 다시금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냈고 안정적으..
2016-10-20 16:50:01
청란 '추잉껌 페이퍼'..드럼 위 껌종이의 꿈
1981년 네이멍구(내몽골)에서 태어난 청란은 변화하는 중국의 큰 흐름 한가운데 놓인 바링허우 세대(1980년대 출생자) 중 하나다. 대개의 중국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자란 작가의 초기 비디오 작품에 해당하는 '추잉껌 페이퍼'는 그의 밴드 활동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에게 음악은 감각과 움직임을 결합한 젊음을 상징한다.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
2016-10-17 17:21:21
김홍도 '서호방학도' 속세를 떠난 시인의 유유자적
속세를 떠나 매화와 학을 벗 삼아 유유자적의 삶을 추구했던 북송의 시인 임포(967~1028)의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서호방학도'다. 종폭의 화면에 풍성하게 피어난 매화를 근·중·원경에 고루 배치하고 대부분의 공간을 여백으로 두어 안개 어린 서호의 정경을 아련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매화꽃에 얹은 호분과 인물의 얼굴, 두루미의 묘사에 채색을 한 것을 제외하면 대..
2016-10-13 17:56:15
토니 아워슬러 '제거'
토니 아워슬러(59)는 영상과 오브제를 결합한 독특한 미디어 설치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아트'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1980년대 뉴욕 아트신에서 텔레비전과 비디오 아트에 대한 실험을 했다. 초기 작업은 어두운 방에 비디오와 소리, 언어가 여러 오브제와 함께 놓인 설치를 제작하거나 비디오 모니터에서 나오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
2016-10-10 17:21:24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없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붓, 무심한 듯 얹힌 색색의 물감, 깊이가 느껴지는 다채로운 색. 강요배(64)의 작품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하나의 의미를 담아낸다. 붓이 스친 흔적은 바람에 흔들리고 나부끼는 뜨락의 움직임으로 남았다. 물감이 찍힌 자리는 노랗고 붉은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꽃이 되고 풍경이 되었다. 제주의 거친 바람과 그 소리까지 담아내는 공감각적인..
2016-10-06 17:48:01
앤서니 곰리 '양자 구름'
위대한 현대조각가, 현대미술의 구도자 등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조각가 앤서니 곰리(66)는 본인의 몸을 실제로 캐스팅한 인체 형상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해 혁신적인 형태를 창조해왔다. 한때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불교에 심취했던 곰리는 인간의 현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점유하는 공간영역 자체를 조명하고, 인..
2016-10-03 17:02:44
이중섭 '호박꽃'.. 가족에 대한 그리움
이미 상당히 자란 크고 작은 호박들과 여기저기 망울이 맺히기 시작한 호박꽃들 사이로 등불처럼 노랗게 활짝 핀 호박꽃 하나가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 좋게 뻗어나가는 호박넝쿨 사이로 황토 빛 흙내음이 진하게 풍겨 나오는 듯한 인상에 이끌려 그림 앞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우리는 거침없이 그어 내린 자유로운 필획들로 형태의 윤곽선과 색채의 ..
2016-09-29 17:03:56
메탈에 새긴 시간, 그 시간 속에 담긴 빛
독일에 거주하면서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 SINN(진·한국명 김진언)의 개인전 '트라문타나 한가운데 서다(Middle of the Tramontana)'가 서울 효창동 에프앤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중해 발레아릭의 작은 섬 미노카에 머물며 영감을 받아 작업한 10여점의 메탈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대학시절 떠난 유..
2016-09-28 17:14:34
바버라 크루거 '무제'
미국의 개념주의 예술가이자 사진작가, 페미니즘 아티스트인 바버라 크루거(70)는 잡지나 신문, 광고와 같은 기존 이미지에 텍스트를 결합한 포토 몽타주 작품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대형 광고판과 같아 보이는 세련된 이미지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패션 잡지의 수석 디자이너까지 맡았던 그녀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녀는 이 독특한 형식을 통해 대담하고 뚜렷..
2016-09-26 17:09:55
신성희 'M-25005'
최근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표면과 이면'전을 펼친 고 신성희 화백(1948~2009)은 화려하게 채색한 천을 띠처럼 잘라 캔버스 틀에 묶고 엮으면서 회화와 화면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바꾼 작가다. 미술사학자 강태희에 따르면 그는 생전에 작품은 '고백하는 장소이자 기도하는 집'이며 '입방체는 나를 고백할 수 있는 성전'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대 졸업 후 10년을 국내 화..
2016-09-22 17:28:55
조지 시걸 '우연한 만남'.. 현실 속 현실같지 않은 일상
조지 시걸(1924~2000)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화단 전체를 풍미하던 1950년대 회화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이내 본인의 표현 욕구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인체의 형태를 그대로 떠내는 작업으로 전환했다. 젖은 석고붕대를 인체에 직접 감고, 마르면 붕대를 떼내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다. 1970년 이후에는 석고나 실리콘으로 떠낸 외형에 청동을 주입..
2016-09-19 17:29:21
피에르 위그 '반짝임 탐험'
수많은 분야의 문화예술이 합해지고 분리되고 또 서로 섞여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지는 시대의 흐름에 현대미술은 새 물줄기를 대면서 동시에 큰 강을 이루기도 한다. 프랑스 출생의 피에르 위그(52)는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다. 작가는 대중적 서사체계를 뒤섞어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작업 방식을 통해 알려진 이후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와 기획의 영역까지 다양..
2016-09-12 17:21:23
최욱경 '무제'.. 새로운 색채의 에너지
최욱경 '무제' 요절한 비운의 추상화가 최욱경(1940~1985)의 작품은 자유분방한 붓질과 강렬한 원색의 대비가 특징이다. 그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도미해 1960년대 전후 세계 미술사의 중심이었던 뉴욕의 강렬하고 대담한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이로 인한 허무감으로 말년에는 우리의 서예와 민화를 연구해 단청 같은 한국적인 색을 사용하는 실험적 시..
2016-09-08 17:30:51
건물과 공간, 균형과 갈등
1980년대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수학할 때 데미안 허스트, 사라 루카스 등과 교류하면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로 알려졌던 리암 길릭(52)은 20세기 저명한 평론가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을 개념적이고 방법적인 회의를 통해 공유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예술이 일상에 개입하는 순간과 자신의 작업, 또 자신의 작업이 자리할 공간을 조정하는 일, 이를 통해 ..
2016-09-05 17:17:36
리암 길릭 '모든 관계가 균형을 이루면, 건물은 사라질 것이다'
리암 길릭 '모든 관계가 균형을 이루면, 건물은 사라질 것이다' 1964년 영국 에일즈버리에서 출생한 리암 길릭은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1997년 카셀도큐멘타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0년대 영국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수학할 때 데미안 허스트, 사라 루..
2016-09-05 17:06:04
강력한 색채의 자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1916~2002)은 "자연을 바탕으로 하여 순수한 추상적인 상태를 형상화한다"는 그의 말처럼 산을 통해 '한국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평생 화폭 앞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만년에는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부드럽고 순화된 색채와 구성을 완성한 그는 사실 항해사를 꿈꾸며 일본으로 넘어갔던 인물이다. 자신의 계획이 실현될 수 없다는 ..
2016-09-01 17:50:49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 '리요'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는 2015년 파리 퐁피두센터, 2016년 뒤셀도르프 K20 미술관에서 눈에 띄는 회고전을 진행한 바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이자 2000년대를 이끈 관계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그는 미술관 전체를 예술적 통찰이 담긴 기억과 경험의 관계망으로 만들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그는 유난히 낯선 곳에서의 경험, 기억, 일상 등에 ..
2016-08-29 17:05:30
김종학 '여름개울'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종학 화백(79)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캔버스 위에 담겠다는 일념하에 30년이 넘는 세월을 설악산 인근에서 보내며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산과 들, 평범한 꽃과 풀과 나무, 나비와 벌과 새 같은 설악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김 화백은 "그림 그리기란 사람이 자유롭고자 함인데 지금까지 이념의 노예가 되었던 것은 말도 안..
2016-08-25 17:21:05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소용돌이 숲'
스페인 출신의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39)의 '소용돌이 숲'은 직접 제작한 짐벌 카메라를 이용해 브라질의 열대밀림을 촬영한 작품이다. 작가는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 이후 최근 1~2년 사이 '팬텀' '소용돌이 숲' 등을 발표했는데 모두 브라질의 밀림인 마타 아틀란티카(Mata Atlantica)를 촬영한 것이다. 식물들이 빽빽한 울창한 밀림을 촬영한 두 필름은 촬영 및 상영 ..
2016-08-22 17:25:11
최영림 '여인'
한국적 주제성과 현대적 표현의 토속적 정감 및 친근감이 남다른 서양화가 최영림(1916~1985)의 작품은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온 월남 작가의 망향의식이 그 바탕이다. 현실세계의 고통을 환상적인 설화의 세계로 환치시켜 향토성이 다분한 그의 작품 세계는 캔버스에 고운 황토 가루나 모래를 접착제로 바른 후 물감을 칠한 위에, 목판화에서 영향받은 선 중심의 간단명료한 ..
2016-08-18 17:21:38
에코 누그로호 '나를 믿게 해줘'
집 모양의 헬멧을 쓴 남자의 목덜미 아래로 화려한 색의 꽃이 쏟아진다. 사방으로 뚫린 창으로 보이는 남자의 눈은 뒤통수에도 달렸다. 그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에코 누그로호(39)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 작가임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에코 누그로호가 미술계에 입문한 시기는 정치사회적으로 격변의 시기..
2016-08-15 17:11:45
서세옥 '사람들'
1940년대 이래 수묵화의 세계화를 이끌어온 산정 서세옥(87)의 작품들은 흰 바탕에 검은 먹선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추상적인 화면이 특징이다. 한국 전통회화를 재해석해 수묵의 번짐과 농도를 이용한 추상적 기호를 구상한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인간'이라는 주제로 대표작 '사람들' 연작을 시작해 인간의 본질에 집중하며 한국 현대 동양화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2016-08-11 17:21:03
리칭 '부분적으로 결합했다가 취소한 이미지'
13억 인구의 관심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까. '대륙의 실수'라는 표현은 중국의 전자제품을 바라보는 부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시샘이 담긴 당혹스러운 감정을 내포한다. 그저 크나큰 시장을 발판 삼아 물량을 앞세운 복제만을 일삼던 이들이 어느덧 앞선 기술력을 탑재하고 저 멀리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미술'은 어떨까. 한동안 중국 작가가 다른 작가의 ..
2016-08-08 17:15:20
이성자 '목동자리의 도시'
프랑스에 정착한 최초의 한국인 여성작가 이성자(1918~2009)는 전쟁과 이별로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항상 예술이 어떻게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향하게 할지를 탐구해왔다. 그녀의 실존적 고찰과 하늘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우주적인 관점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형성하게 했는데, 캔버스 전체를 폭죽처럼 밝히고 있는 수없이 많은 물감 방울들은 바로 대기의 신비로움을 표현..
2016-08-04 17:25:20
레슬리 드 차베즈 '야수의 복부 아래서'
필리핀 작가 레슬리 드 차베즈(38)의 조각설치 작품 '야수의 복부 아래서'에는 십자 형상의 자세를 한 남자가 등장한다. 두 팔은 양쪽에 놓인 고해성사대의 상판에 올리고, 다리를 묶은 쇠사슬은 천장에 매달렸다. 남자의 뒷모습 아래로 무릎을 구부려 시선을 내리자, 빈민가의 가옥들로 뒤덮인 남자의 팔과 가슴, 다리가 보인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판자로 만든 작은 집들..
2016-08-01 17:12:26
남관 '추상(2)'
근대부터 현대에 걸쳐 있는 작가 남관(1911~1960)은 광복 직후 귀국 때까지 일본에서 활동하며 기반을 닦다 1954년 파리로 이주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서울과 파리를 왕복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나는 오직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의 심화만이 나를 실망, 비애, 고독에서 구제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남관은 15년간 파리에서 겪은 생생한 기록을 바탕으로 동양의 ..
2016-07-28 17:28:36
김병호 '방사형 분출'
김병호 작가의 '방사형 분출'을 처음 보았을 때 작품은 천장이 낮은 목조건물 이층에 놓여 있었다. 짙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금색 표면이 번쩍거렸고, 작품의 규모보다 두세 배 큰 그림자가 벽과 바닥에 둥글게 원을 그리며 이어졌다. 다수의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꽃의 중심부를 연상할 것이다. 마치 기계 도면으로 구현한 식물 같다고 할까. 바닥에 놓인 단단한 중심체에..
2016-07-25 16:56:19
장욱진 '나무'
소탈하고 진솔한 삶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조형성을 구현한 장욱진 화백(1918~1990)의 작품은 일견 어린아이가 그린 듯 순수하기만 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자리를 던지고 수십년간 도시화된 서울을 벗어나 손바닥만 한 작품을 제작해온 그는 불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집에서 어렵게 그린 그림들을 팔아서 돈을 벌기보다는 간절히 원하는 이에게 대가 없이 줘버리곤 했..
2016-07-21 17:03:52
마크 퀸 '피터 헐'
영국 작가 마크 퀸(52)은 1999년부터 장애를 가진 이들의 인체를 소재로 대리석 조각 연작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작품 '피터 헐(Peter Hull)'의 경우를 보자. 작품의 주인공 피터 헐은 태어날 때부터 사지가 없었지만, 장애인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마크 퀸은 그의 신체를 이탈리아 석공과 함께 고전적인 방식으로 재현했다. 대..
2016-07-18 17:29:19
이대원 '과수원'
한국 수묵화의 거장 청전 이상범 선생은 '농원' 시리즈로 유명한 풍경화가 이대원(1921~2005)의 작품을 가리켜 '서양물감으로 그린 동양화'라고 평한 바 있다. 이대원은 작품 전부가 자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끊임없이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그 근원에 근접하기 위해 수없이 같은 대상을 새로운 작품으로 그려왔다. 주말이면 파주의 과수원을 찾았던 ..
2016-07-14 17:13:18
듀앤 핸슨 '벼룩시장 상인'
듀앤 핸슨의 조각을 보면 십중팔구 "진짜 사람과 똑같다"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진짜 사람과 똑같은 조각'이라는 말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말 이들과 똑같은가? 한 귀퉁이에 앉아서 무료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거나, 관리하지 않은 몸은 살이 찌고,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된 피부는 노화로 늘어졌나? 짝이 맞지 않은 후줄근한 옷을 입고, 피곤에 찌들어 멍..
2016-07-11 17:17:46
천경자 '막은 내리고'
천경자 화백(1924~2015)은 동양화의 전통적 패러다임으로부터의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 자신의 삶과 꿈, 환상, 동경의 세계를 독특한 색채로 표현해 채색화 부문에서 독자적 작품을 보여준 한국 화단의 대표적 인물이다. 1969년 남태평양 타히티섬, 고갱의 섬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한 낯선 이국 땅 사람과의 만남과 그들의 문화는 그에게 탁월한 소재이..
2016-07-07 17:08:23
제이크 & 디노스 채프먼 '끔찍한 해부'
파랗게 펼쳐진 채프먼 동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푸른 나무와 덤불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세요. 참으로 천진난만하고 평화롭지 않습니까. 제이크 & 디노스 채프먼 형제는 첫 주요작품부터 자신들이 만든 일종의 마네킹으로 신체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1993년 '전쟁의 참상(Disasters of War)' 연작에서 작가들은 고야의 아쿼틴트(동판화의 일종) 연작에서 표현된 신체..
2016-07-04 16:55:25
이중섭 은지화
6·25전쟁 직후 가난과 질병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독창적 예술세계를 일군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 40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전쟁 직후 불과 5년에 걸친 짧은 기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종이와 은박지에 연필, 잉크, 먹, 크레파스로 그린 무수한 그림들은 비록 서양의 양식과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양담배를 싸는 은..
2016-06-30 17:24:06
권오상 '더 스컬프처2'
권오상 작가(42)가 청동으로 슈퍼카를 만들었다. 작가의 '더 스컬프처(The Sculpture)' 연작 중 하나로 슈퍼카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Lamborghini Murcielago)'를 소재로 했다. 10여년 전 자신의 큰 개인전을 준비하던 30대 젊은 작가의 야심이 조각의 표면만큼 반짝반짝 빛났다. '가장 현대적인 무언가를 청동이라는 가장 전통적인 소재로 만들어보자'라는 작가의 생각은 ..
2016-06-27 17:23:41
박수근 '시장'
박수근 '시장'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은 '예술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듯이 생전에 생계를 위해 그림을 팔았던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노상과 장터의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다.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그는 독학으로 국전 당선에까지..
2016-06-23 17:17:22
키스 해링 '블루프린트 드로잉'
"나는 예술가로 태어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 뉴욕의 ..
2016-06-20 17:13:00
김기린 '안과 밖'
단색으로 채워진 화면의 바탕에 반복 나열된 점으로 이뤄진 김기린(80)의 모노크롬 회화는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영향을 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에드 라인하르트를 연상시킨다. 그는 1970년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단색의 평면회화를 오브제화한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노크롬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1980년대 선보인 사각의 캔버스 안..
2016-06-16 17:07:01
신디 셔먼 '무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인 신디 셔먼(62)은 사회의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으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자화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담은 '무제 필름 스틸' 연작을 제작했고, '역사 초상화' '섹스픽처' '마네킹' '여성 사회인사 연작' 등을 차례로 ..
2016-06-13 18:06:40
김창열 '물방울'.. 작은 물방울 속에 담긴 우주
'물방울을 그리는 화가' 김창열(87)은 1970년대 초 파리에서 데뷔한 이후 지난 40여년간 줄곧 물방울이라는 소재에 천착해 왔다. 김창열의 파리 생활은 마구간 화실에서 가난과 결핍 속에 시작됐다. 어느 날 캔버스에 뿌려본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고 시작된 물방울 그림은 첫 개인전부터 환상적이면서도 완벽한 면모로 당시 하이퍼 리얼리즘과 유럽..
2016-06-09 16:55:58
날지 못하는 자의 실패한 비행
소니아 쿠라나 '새' 퍼포먼스비디오, 흑백, 무음, 2분, 1999년 육중한 몸을 그대로 드러낸 여성이 단상 위에서 낙하를 반복한다. 날갯짓을 하기도 하고 한쪽 발로 서서 균형을 맞추는 듯하다가 바닥에 떨어져 구르기도 한다. 소니아 쿠라나(48)의 '새(Bird)'는 이렇듯 날지 못하는 자의 실패한 비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2분짜리 흑백 퍼포먼스 비디오 작품이다. 1999년 작품..
2016-06-06 16:53:03
동양적 정신과 물질의 조화
한지의 원료인 닥을 사용해 물성과 수행을 합일시키며 '그리지 않는 그림'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모색해온 화가 정창섭(1927∼2011). 한지의 원료인 닥이 지닌 고유의 생명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비운 정 화백은 생전에 "나의 작업은 주어진 종이 표면에 어떤 우연적 과정을 펼쳐놓은 것이 아니고 종이의 원료인 닥을 주무르고 반죽해 손..
2016-06-02 17:14:29
이질적 재료가 전달하는 날것의 감각
이동욱 '무제'(2012년) 일반인들도 미술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엄청난 금액의 경매 결과나 위작 사건이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재벌들의 재산 증식과 탈세의 별책부록으로, 미술은 잊을 만하면 등장했다. 삶에 쫓겨 미술을 잊은 사람들에게도 미술과 관련한 스캔들만은 잊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다. 최근 결이 다른 대형 이슈가 터졌다. '어느 유명인이자 예술가의 이..
2016-05-30 17:35:20
윤형근 'Umber-Blue' 내면으로 스며든 검은 수묵의 빛
혼란의 시기에 휴머니즘을 추구하던 작가 윤형근(1928~2007)은 시대적 아픔인 전쟁으로 인한 비극과 참상으로 고통 받던 시절, 내면에서 폭발하듯 분출하는 한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인물이다. 당시 한지에 스며들어 번지는 방식을 사용한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호평을 받은 김환기의 영향으로 윤형근의 작품세계는 1973년을 기점..
2016-05-26 17:08:06
숫자세기 퍼포먼스.. 시간의 반복
일본의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다쓰오(59)는 1996년부터 '숫자세기(Counter Voice)'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숫자세기: 물'(1996년), '숫자세기: 공기'(1996년), '숫자세기: 와인'(2000년), '숫자세기: 우유'(2005년) 등은 이후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대개 10분에서 15분간 작가를 포함한 퍼포머들은 숫자를 9부터 1..
2016-05-23 17:22:55
권영우 '무제' ..허무에 도전하는 인간의 결연함
동양화의 현대적 표현에 있어 다채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종이의 화가' 권영우 (1926~2013).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한지 매체를 고집하며 이를 뚫고 찢는 행위를 통해 종이가 그 자체로서 독자적 회화 세계임을 입증해왔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단색화전'에서 국제적 주목을 받은 그의 작품은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첫 단색화 전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
2016-05-19 17:37:58
오용석 '미래의 기억'
오용석 '미래의 기억' 미국 의회 의사당 주변을 맴도는 유에프오(UFO), 눈 덮인 산에 곤두박질치는 비행선, 어둠이 깔린 하늘을 뚫고 우주선에서 내려오는 외계인. 오용석 작가의 '미래의 기억'에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한두 번 보았을 법한 장면들이 조각조각 이어진다. 작가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공상과학영화 장면들에 영화 속 장소와 유사한 ..
2016-05-16 17:50:48
하종현 '접합 2002-49'
하종현 화백(81)의 '접합(Conjunction)' 연작은 안료와 마포가 기름을 통해 하나가 되며 만들어낸 토속적인 재질감이 마치 흙벽을 연상시킨다. 한국 단색화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인 그의 작품은 캔버스 표면에 물감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뒷면에서 앞면으로 안료를 밀어내는 배압법(背壓法)에 의해 탄생되는데, 유럽 등 서구 화단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독창적 기법과 실험정..
2016-05-12 16:53:16
장환 '족보'
1990년대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의 억압적 분위기에 저항하는 예술가 집단들이 출현했다. 특히 베이징 이스트빌리지의 예술 커뮤니티 활동을 기반으로 한 장환(51)은 1990년대 중국의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현대미술을 이끈 주인공으로 손꼽힌다. 종종 중국 정부에 제재를 당할 만큼 급진적이었던 그의 퍼포먼스는 대개 나체로 등장하는 신체를 이용한 마조히즘적 프로..
2016-05-09 16:44:08
정상화, 꽉 차있지만 비어 있는..
작품에 드러나는 시간적 진행을 시각화하는 정상화 화백(84)은 한국 단색화의 대표주자다. 프랑스 생 테티엔 미술관장이자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로랑 헤기는 "그의 단색의 화폭은 자연스러움, 정지된 고요함, 그리고 감정을 배제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무제 87-7-A'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수한 사각형의 형태는 안료를 바르고 다시 떼어내고 또 바르..
2016-05-05 17:10:59
준 응우옌하츠시바 '메모리얼 프로젝트II'
깊은 물 아래에서 다이버들이 새해 행사에 사용되는 용 인형을 움직이면서 퍼포먼스를 벌인다. 카메라는 느리게 움직이면서 다이버들의 움직임과 몸의 표면을 훑듯이 가깝게 포착한다. 공 모양의 철창 속에는 수십개의 공이 들어있는데 이것들이 터지면서 공 내부에 든 염료가 피어오른다. 푸른 물과 붉은 용, 피어오르는 염료가 만들어내는 연무, 다이버들이 내뿜는 기포 등이..
2016-05-02 18:14:58
박서보 '묘법 No.10-78'
에마뉘엘 페로탱 등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잇따른 전시로 주목받고 있는 단색화의 주역 박서보(85).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특정 대상이 아닌 그리는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화가다. 지난 1973년부터 무려 40여년간 그의 평생의 기반이 되어온 '묘법(Ecriture)' 시리즈는 세 살 난 아들이 네모 칸에 글씨를 써넣는 연습에서 얻은 깨달음이 그 시초다...
2016-04-28 17:43:55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의 기록
카린 잔더 '1:5 노란 외투' 199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소형 조각트리엔날레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독일의 개념미술가 카린 잔더의 조각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베르너 마이어의 미니어처를 아크릴로 작고 정교하게 제작한 것이다. 미니어처 형태의 작은 조각 작품들은 많지만, 잔더의 작품은 작품의 제작과정과 정교한 세부표현으로 이목을 끌었다. 잔더..
2016-04-25 18:00:35
분방한 붓질, 질서의 해체
이우환 '동풍'(1984년) 백남준과 더불어 동양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를 포함한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수차례의 개인전과 특별전을 가진 이우환(80)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그는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동양 최초의 현대미술, 일본 '모노하(物派)' 운동..
2016-04-21 17:34:07
워홀과의 강렬한 눈빛 교환
강형구 '놀라고 있는 앤디 워홀'(2010년) 현대미술에서 유명인들의 모습을 차용하는 주된 이유는 그 유명세에 있다. 이들의 유명세는 '누구나 아는 사람'이라는 보편적 이미지를 공유하지만, 작가는 때론 보편적 이미지에 반하는 사적 감성을 작품에 함께 표현하곤 한다. 강형구 작가(61)의 작품 속 유명인들은 이렇듯 보편적이지만 사적인 감성영역의 경계에 있다고 보인다. ..
2016-04-18 17:13:12
조국을 그리워하며 찍은 점
김환기 '무제 01-VI-70 #174'(1970년) 일찍이 영국의 미술사학자에 의해 '한국의 가장 유명한 20세기 화가'라는 칭송을 받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그의 작품이 잇따라 국내 최고가를 경신하게 된 바탕에는 한국 회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주의 서양 회화에서 독보적인 작업을 지속해온 수화 특유의 조형성이 깔려 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작고하기 직전..
2016-04-14 17:34:52
우리는 같은 사회에 살고 있을까
오늘날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는 중국 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는 주역이다. 바링허우 세대는 중국에서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로, 대부분 독자로 자란 탓에 개인주의적이면서 남과 다른 특별함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다. 이전 세대 작가들에 비해 자유로운 표현으로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다양한 작업 방식을 넘나들며 중국 현대미술의 현대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2016-04-11 17:10:01
우고 론디노네 '유성의 어두운 흐름을 지나서'
'유성의 어두운 흐름을 지나서'는 1963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작가 우고 론디노네가 직접 쓴 시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나무에 대한 관심은 1991년 인디언 잉크로 나무, 언덕, 시냇물, 집 등을 정교하게 그린 목가적인 풍경 드로잉 시리즈부터 시작됐다. 이후 1997년 로마에서 열린 개인전 '달빛과 아스피린'전에서 작가는 실제 살아있는 사과나무 줄기와 가지를 고무로 ..
2016-04-04 17:14:50
개빈 터크 '또 한 명의 부랑자'
개빈 터크 '또 한 명의 부랑자'(1999년) 1997년 로열아카데미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센세이션'전의 프라이빗 뷰가 열렸다. 작가와 미술계 인사 등 특별초청자를 위한 비공개 오프닝 파티에서 개빈 터크(49)는 노숙자 행색과 낡아빠진 의상, 스튜디오에서 종이로 대충 만든 신발을 신고 파티에 나타났다. 그는 말했다. "다들 파티를 위해 한껏 차려입고 오겠지만 나는 그런 옷..
2016-03-28 17:08:58
소피 칼 '캘리포니아 여행'.. 타인의 삶 들여다보기
소피 칼 '캘리포니아 여행'(2003년) "1999년 6월 4일, 소피 칼씨께. 저는 미국에 사는 스물일곱 살 남성입니다. 최근에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한 관계를 끝내야 했습니다. 실연 이후의 감정과 느낌을 추스르면서 일상을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파리에 있는 당신의 침대에서 나의 애도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편지를 보낸 남자는 미국에 거주하는 조시 그..
2016-03-21 18:34:31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위트를 입다
리처드 언글릭 '워홀' 이 작품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세기의 연인'으로 불렸던 불세출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떠올릴 것이다. 아무리 단순화했다 하더라도 입 주변에 선명하게 찍..
2015-07-16 17:25:37
베일 벗는 천경자 대표작, 경매최고가 쓸까
천경자 '막은 내리고'(1989년) 천경자 화백(91)은 지난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일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998년 천 화백으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아 상설전을 열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작품을 교체했다거나..
2015-07-09 17:05:39
사진으로 만나는 마법같은 물의 세계
제나 할러웨이 '물의 아이들' 영국 소설가 찰스 킹즐리의 '물의 아이들'(The Water Babies·1863년)은 굴뚝 청소부인 소년 톰이 사람들에게 쫓기다 실수로 강물에 빠지게 되지만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물의 아이가 되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소설이다. '육지 어린이를 위한 옛날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은 물의 아이가 된 톰이 물 속에서 온갖 실패와 고난을 ..
2015-06-25 17:08:49
수심 가득한 호랑이는 짐작했었나 보다
사석원 개인전 '고궁보월' 사석원 '1895년 경복궁 향원정 호랑이' 화면 가득 그려진 호랑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 뒤로는 부엉이 두 마리와 노루 한 마리가 있고, 햐얀 눈을 뒤집어쓴 누각 위로는 휘영청 보름달이 떠 있다. '원색의 화가'로 불리는 사석원 작가(55)의 신작 '1895년 경복궁 향원정 호랑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품 제목에 노출된 '1895년'이라는 시..
2015-06-15 17:29:13
화려한 색채, 생명력 넘치는 한국의 자연
이대원 '농원'(1998년) 지난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의 자녀들이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이 압류될 당시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은 서울 연희동 자택 거실에 걸려있던 이대원 화백(1921~2005)의 1987년작 '농원'이다. 120호 크기의 이 대작은 그해 말 서울옥션이 실시한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경매'에서 6억6000만원에 낙찰돼 다른 컬렉터의 ..
2015-06-11 17:47:30
한·중·일 작가가 세운 가상도시 '시징'
김홍석·첸샤오시옹·쓰요시 오자와 '시징 올림픽 2008' 시징(Xijing·西京의 중국식 발음)은 세상에 없는 도시다. 한국의 김홍석(51), 중국의 첸샤오시옹(53), 일본의 쓰요시 오자와(50) 등 한·중·일 3국을 대표하는 미술작가 3인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도시다. 동경(東京), 남경(南京), 북경(北京)은 있는데 서경(西京)은 사라지고 없다는 데서 착안했다. 오는 8월 2일까지..
2015-06-01 16:57:28
때묻지 않은 아이의 마음, 세상을 껴안다
노은님 'Untitled' '내게 긴 두 팔이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안아주고 싶다.' 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 노은님(69)이 국내에서 4년 만에 펼치는 개인전 타이틀이다. 지난해 KBS 해외동포상 문화예술 부문상을 받았을 때 밝힌 수상 소감에서 따온 제목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그의 그림을 빼닮은 이 말은 작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예술정신과 삶의 태도를 그..
2015-05-14 17:02:13
디지털 판화로 만나는 장욱진의 그림
장욱진 '가족' 빵집에 들러 빵을 고르듯 그림을 고른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의 '프린트 베이커리(Print Bakery)'는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디지털 판화 형태로 상품화해 누구나 손쉽게 미술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한 새로운 개념의 미술상품이다. 작품 가격도 작가의 지명도나 크기에 따라 적게는 10만원 안팎에서 많게는 300만~400만원으로 다양해 선택의 폭이 비교적..
2015-05-07 16:50:23
강의실을 전시관으로.. 성신여대의 파격
구자승 '정물' 어? 여기 강의실 맞아? 책상과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강의실 벽면에 유명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서울 미아동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강의실을 전시 공간으로 꾸민 '캠퍼스 뮤지엄 군집미술관 초대전' 풍경이다. A동 212호 강의실은 '구자승 미술관', 그 옆 208호 강의실은 '류민자 미술관' 하는 식으로 강의실 하나하나를 한 작가의 전용 공간으로 꾸..
2015-05-04 17:11:05
그림과 함께 하는 시
황주리 '구상의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구상 시인(1919~2004)의 유명한 시 '꽃자리' 중 일부다.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든 감옥..
2015-04-16 17:3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