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모스크바를 출발,하바로프스크를 향하기 시작했다. 집단주의적 관료주의만이 지배했던 동토의 땅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간 만감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이곳 러시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러시아는 감정과 이성이 머리속에서 격렬하게 교차해야만 알 수 있는 나라라고 한다. 100년 전,러시아의 시인 주체프는 러시아를 이렇게 평가했다.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마라. 가슴으로도 받아 들이지 마라. 그냥 있는 자체를 믿어라”라고 말이다. 지금이 바로 그의 말을 믿어볼 때라는 생각이 스칠 즈음 기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TSR)의 수송능력은 각 지역별 지상 시설의 차이에 따라 능력에 차가 난다. 모스크바에 가까운 서시베리아에서 극동지역으로 향할수록 수송능력이 저하되고 있다. 교통 관계자들은 수송능력 기준하여 TSR를 5개 권역으로 나눈다.
TSR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5개 권역으로 나눌 때는 시발점을 모스크바가 아닌 옴스크를 기준으로 삼는다. 첫번째 권역인 옴스크∼노보시비르스크 구간은 그 역할면에서 TSR의 으뜸이다. 우랄과 쿠즈바스공업지대를 연결하는 간선구간으로 시베리아횡단 철도 중에서 화물수송능력이 가장 높고 열차운행밀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주)트랜스시비르스키 엑스프레스·세르비스의 관계자는 “양지역간 산업이 호환성이 있는 관계로 화물수송 능력이 높다”며 “올해부터는 철저한 예약제로 구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회사 관계자인 미하일 겐나디비치씨는 “설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화물을 선적한다해도 서방과 같이 화물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추적되지 않는 관계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최근들어 많이 개선은 되고 있으나 워낙 나라가 큰 관계로 화물추적자동화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이 구간의 선로는 복선이며 직류 전철화되어 있다. 레일은 75㎏/m의 장대레일을 사용하고 있으며,침목도 2000개/㎞로 밀도가 높다. 수송 능력은 1일 140본이다.
이어지는 노보시비르스크∼타이세트 구간은 복선·전철화·자동폐색장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간의 중간역인 마린스크역(201번 국도와 교점이 되는 도시)을 경계로 전력방식이 교류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역에서는 기관차가 교환이 됨과 동시에 비교적 장시간인 36분을 정차하게 된다. 마린스크 역에서는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피곤과 먹을 것에 지친 나그네들을 대상으로 노장층으로 보이는 인근의 촌부들이 코카콜라 등을 나열해 놓은 좌판과 마주치게 된다.
우리네 식탁을 점령해 버린 길다랗게 생긴 일본 오이만을 맛보다가 잘 여문 공주밤처럼 당당하게 생긴 조선오이가 눈에 들어와 얼마냐고 물으니,“10개에 20루블(약 800원)”이라며 아주 짧게 답한다. 밖의 날씨는 영하였다. 기차가 떠날 채비를 한다. 이 구간의 1일 수송 능력은 120본이다.
3번째 권역인 타이세트∼울란우데 구간을 지나다보니 하늘도 땅도 아름답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정적인 도시인 울란우데역에서는 17분간을 쉬게 된다. 점차 극동으로 다가가다보니 생김새가 우리네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올라탔다. 고려인(현지 한인을 지칭. 러시아 인구학 사전표기 기준)인가 싶어 물었다.“니옛(아니요)”라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기사자료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쿠페(장거리 여행객들을 위해 준비된 침대칸)으로 들어갔다. 쿠페는 2인 1실,4인 1실 및 개방형 3종류가 있다.
이 구간은 열차운행 방법이 복잡한 구간이다. 타이세트에서 지마간의 구간은 교류를 사용하나 지마에서 수루잔카 구간은 직류를 사용한다. 직류구간은 고작 376㎞에 불과하다. 러시아 철도 당국이 교류로 바꾸지 않고 있는데 대해서 (주)네프텍힘트랜스 측은 “최고 5000t의 중량열차가 바이칼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직류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기술적 질문에 한계를 느낀다는 걸 안다는 눈치였다. 그가 던진 말은 떡하나 더 먹어라 식이었다. “미스테르(미스터를 러시아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김!죽은 스탈린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별 수 없을거야”라고 말했다. 순간 눈앞에 아무리 들여다봐도 저게 바다지 호수야하는 느낌을 주는 바이칼이 눈 앞에 펼쳐졌다.
울란우데∼카림스카야 구간에 대해 나름으로 열심히 설명해 준 카이저 콧수염을 한 (주)네프텍힘트랜스의 직원의 넥타이는 정열적인 붉은 색이었다. 흡사 하루는 붉고,자고나면 푸르고,또 그렇게 눈을 부비며 일어나면 은백색의 빛으로 변하는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에 걸맞은 색이 그 콧수염의 넥타이 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간의 궤도는 R50∼R65를 사용하고 혼간의 구배는 18/1000로 급구배를 이루고 있으며 침목은 1000m당 1820본이다.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급구배구간 초중량열차나 긴 열차가 통과할 수 없는 구간이다. 그렇기때문에 영하 40∼70도를 오르내리는 동절기에 이구간을 통과하기란 간단치 않다고 (주)트랜스레일의 관계자(그녀는 뭐 대단한 비밀이라도 가르쳐 주는 양 쉬쉬하며)는 전한다.
마지막 5번째로 이른바 극동권역인 카림스카야∼하바로프스크 구간이야말로 TSR구간에서 가장 현저하게 수송능력이 떨어지는 구간이다. 항카호수를 끼고 도는 관계도 있으나 지형이 매우 험준하기 때문에 열차의 평균 속도,열차중량도 아주 낮다. 흡사 지금은 없어진 비둘기 호가 지나는 것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수송능력을 따지기에는 너무나 어렵다는 게 동행한 정필수 박사의 설명이었다.
/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
박스:
이르쿠츠크와 바이칼호수
“오물 드세요” 바이칼(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을 가진 터키어) 호수에 가면 금발의 미녀가 오물을 먹으라고 유혹한다. TSR이 주는 피곤함이 바이칼이 있기에 녹는다는 러시아인들의 설명은 ‘오물맛’에 압도 당한다. 오물은 청정호수인 바이칼에서만 나온다는 물고기다. 이 물고기를 훈제하여 뜨끈뜨끈하도록 동그란 통에 담아서 판다. 탁 트인 호수를 앞에 두고 오물과 보드카의 만남은 정말 환상적이다.
바이칼 호수는 세계 담수량의 23%를 기록하고 있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가로지른 초생달 형상을 하고 있다. 현지인들은 단 한번도 끝에서 끝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깊은 곳은 1.7km에 달한다. 바이칼은 하난의 생태학 박물관이라고들 한다.
호수를 관광도 할 수 있다. 멋드러진 범선을 타고 도는데 1시간에 우리돈으로 5만원을 받는다. 바이칼 호수로 가기 위해서는 인근의 큰 도시인 울란우데나 이르쿠츠크를 필히 경유해야 한다. 이르쿠츠크 출신이자 한국계인 러시아 국가두마 의원 유리 텐(사진)은 바이칼 호수 주변에 별장을 짓고 있다고 했다.
한반도가 훤히 뚫리고 TSR이 부산에까지 연결되면 많은 한국관광객들이 몰려 오리라는 그의 희망섞인 전망은 향후 TSR의 역할에 크게 기대를 거는 눈치다 .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파리 혹은 시베리아의 신사도시’로도 불리운다. 이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못하나 박지 않고 만든 3∼4백년된 목조 주택이나 건물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 골목에는 러시라 정교회 건물로 보이는 건물들이 보인는데 실내장식이 아주 호화롭다.
러시아 인구의 2%에 이르는 280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기초과학이 잘 발달된 도시다.과학과 관련한 정부 산하 연구소만도 30군데 이르고 있으며 교육관련 연구소도 20군데 달하고 있다. 걸어 가는 10명 중의 1명은 연구원으로 보면 틀림없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젖줄은 앙가라 강이다.
앙가라 강은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하고 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도시다. 이 도시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가져 오겠다는게 우리 정부의 구상이다. 님도보고 뽕도 딸 수 있는 도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다 .�z김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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