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간 충북 증평에서 채소농사를 짓고 있는 김모씨(51). 김씨 가족의 식탁에는 1년 12개월 양배추,상추,오이·배추김치 등 갖가지 채소요리가 계절에 따라 단골 메뉴로 올라온다. 김씨가 직접 채소 농사를 짓다보니 반찬 값도 크게 줄일 수 있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풀만 먹는 ‘염소’냐”며 반찬 투정을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인 딸은 다이어트에 좋다며 채식을 선호한다.
최근 국민의 식생활이 크게 바뀌면서 각종 채소나 야채를 이용한 주스도 나오고 여성들에게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꽤 인기다. 그런데 채소에 미량의 방사선이 함유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채소는 의학적으로도 밝혀졌듯이 비타민 등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각종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음식이다. 이는 채소에 함유된 미량의 방사선이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는 것이 입증된셈이다.
◇우리생활과 방사선=무역회사의 중간 간부인 송모부장(46)은 요즘 제2의 인생을 맞고 있다. 송부장은 지난해 7월 몸이 찌뿌드드 하고 피곤함을 자주 느껴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의사의 단 한마디는 ‘하늘이 도왔다’였다. 위암 초기였다. 이처럼 방사성동위원소(RI)는 우리 몸속에 숨어 있는 질병을 찾아내고 이를 치료하는데 쓰인다. 치료를 위한 적정량의 방사선 투여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의과대학 이명철 교수(53)는 “현대 의학에서 RI를 통한 치료는 기대 이상의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방사선은 우리가 매일 먹는 쌀에서,채소에서,우리몸에서도 나온다. 지금도 우리곁에 존재하고 있지만 볼 수도,만질 수도,느낄 수도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의 실체도 모르는 채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방사선은 알고 보면 ‘약방에 감초’라는 것과 이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방사선의 정체=방사선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생활공간을 오가는 일종의 에너지다. 다만 우리가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나 맛도 없기 때문이다. 방사선은 어떤 물질이 구조적으로 최고의 안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변신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즉,물질을 이루고 있는 양성자·중성자·전자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능력(방사능)을 가진다. 이런 물질을 ‘방사성물질’이라 하고,방사선은 방사성물질에서만 나온다. 방사선의 종류에는 알파선,베타선,감마선과 주로 인공적으로 만드는 X선,중성자선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방사선과 함께 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실(失)보다는 득(得)이 더 많다고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김현기 박사는 “방사선은 우리의 생활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인체에 어떠한 영향도 못미치는 미량”이라면서 “방사선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방사선과 인공방사선=방사선은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한다. 심지어 우리가 먹는 쌀이나 몸속에도 방사선이 나온다. 이를 자연방사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정도의 미량이기 때문에 건강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통계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한 사람이 자연적으로 받는 방사선량은 1∼2mSv(밀리시버트) 정도. 이는 X선 가슴사진을 한 번 찍을 때 받는 양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수마을인 경남 청학동 주민도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대병원 방사선과 관계자는 “미량의 방사선 투여는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질병을 조기에 발견,치료해 주는 의약계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토양에서 우라늄함량이 많은 괴산지역이나 탄광촌이 밀집한 강원도 지역에서 측정된 방사선량은 타지역의 평균치(0.02mr)에 비해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주민 건강에는 지역 간 불균형이 발생되지 않고 있다. 방사선은 또 개방적인 한옥구조보다 밀폐형 도회지의 가옥구조,특히 석재를 많이 사용한 실내에서 방사선 준위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일반인이 평균적으로 받는 방사선피폭을 성분별로 보면 자연방사선이 전체의 87%를 차지하고 그중 라돈이 47%를 차지하고 있다. 인공적 요소에 의한 피폭은 진단방사선 12%,핵실험 낙진 0.4%,원자력시설의 유출물 0.1% 등이다.
반면 TV나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공항의 보안점검장치,병원에서 흔히 쓰이는 X선장치나 암치료장치 등은 인공방사선이다. 많은 사람이 자연방사선은 괜찮지만 인공방사선은 위험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방사선이 가진 성질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둘 다 똑같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다양하게 쓰이는 방사선=방사선은 인체와 자연생태계에 해롭게 작용할 수 있는 우려가 있으나 의료 및 산업분야 등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RI를 이용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사선의학’이라는 첨단 의료술이 개발되고 있다. 방사선을 이용한 첨단 의료술은 불치병인 암 등 악성종양의 치료에 널리 이용되는 것은 물론 1회용 주사기,압박붕대 등 각종 의료기기를 안전하고 완벽하게 멸균소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독성화학물질의 분자구조를 파괴시켜 독성도 제거한다. 뿐만 아니라 농업분야에서는 품종개량,식품의 장기 저장 등에 이용되고 있다.
실제 방사6호(보리),밀양10호(벼),방사콩(콩나물 콩) 등이 RI에 의해 개발된 신품종들로 농림부 종자심의위원회에서 장려품종으로 지정됐다.
공업분야에서는 주로 비파괴검사와 생산공정의 품질관리 등에 이용되고 있다. 그밖에 우주개발이나 해양개발과 같은 첨단기술개발은 물론 공해조사나 유해물질 등을 분석하는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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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kim@fnnews.com 김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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