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계열 5개사를 포함 쌍용양회·동양철관·진도·효성기계 등 구조조정이나 매각작업을 진행중인 한계기업들이 회계법인으로부터 무더기로 ‘기업 존속능력 의문’ 판정을 받았다. 또 엔피아·IHIC·동양토탈·호스텍글로벌·경우미르피아 등 인수후 개발(A&D)주와 서울이동통신·씨티아이반도체와 같은 중견 코스닥기업들도 향후 기업의 운명이 불투명하다는 회계법인의 판정이 나왔다. 이들 종목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물론 ‘계속기업 의문’ 판정이 당장 기업의 퇴출이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재무개선 노력이나 채권단의 채무상환 유예 등에 의해 회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 내부사정을 가장 잘 아는 회계법인이 “언젠가 이 기업은 문을 닫을 수 있다”며 계속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상 상당수업체는 퇴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부분 자본잠식=기업존속에 의문이 제기된 업체들의 재무구조는 한마디로 엉망이다. 누적결손으로 자본금을 까먹은데다 계열사에 거액을 지급보증해 우발채무 위험에 노출됐다. 게다가 지난해 대부분 큰 폭의 적자를 입어 영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자도 못갚을 정도다.
오리온전기는 올해중 8454억원의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또 대우통신의 누적결손은 1조2129억원에 이른다. 한별텔레콤은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라고 담당 회계법인이 밝혔다. 또 사업전망이 워낙 불투명해 존속 불투명 판정을 받은 기업도 있다. 서울이동통신과 세림아이텍은 무선호출의 사업성이 문제가 돼 ‘계속기업 의문’ 의견을 받았다. 씨티아이반도체는 매출액의 80%를 차지하는 미국 레이시온사와 계약이 중단돼 같은 판정을 받았다.
코스닥시장의 최고 테마주인 인수후 개발(A&D)주도 대거 존속능력 의문 판정을 받았다. A&D의 원조인 엔피아를 비롯해 IHCI·호스텍글로벌·동양토탈·국제정공 등에 대해 회계법인은 인수개발이전 우선 생존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14개 코스닥기업이 기업의 계속성에 의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재무건전성과 재무제표의 적정여부는 별개임을 보여줬다.
◇주가는 나몰라라=언젠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에도 불구, 일부기업의 주가는 감사보고서 제출 이후 오히려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영업중지 상태인 한국디지탈라인의 주가는 최근 한달간 3배 가까이 올랐다. IHIC와 도원텔레콤, 오리온전기도 2배이상 급등했다. 의성실업·동성도 마찬가지. ‘묻지마 투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유동성 위험을 안고 있는 휴먼이노텍은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26억원의 자금을 공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골드뱅크도 80억원 증자에 나섰고 IHIC·경우미르피아도 증시에서 자금조달을 추진중이다. 생사가 불투명한 기업이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조달에 나선 것은 사실상 모럴해저드라는 비판이 높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회계투명성이 확보됐다고 하지만 투자자들은 아직 회계자료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고 있다”며 “기업의 존속능력은 가장 기본적인 고려사항”라고 말했다.
◇증시 태풍의 눈으로=존속능력 의문 판정을 받은 48개 기업은 향후 증권시장에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의 생사는 재무 및 경영개선 계획에 달려있다. 이들이 추진중인 구체적인 재무개선내용은 채무재조정, 채권단 출자전환, 부동산매각, 자본유치 등으로 모두 쉽지않은 사안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이 한번 재무위기에 빠지면 쉽사리 탈출하지 못한다”며 “상당수 기업은 결국 퇴출을 피할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증시 발전을 위해 한계기업의 퇴출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A증권 이사는 한계기업의 퇴출이 국내 증권시장을 실적위주의 장세로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계속기업존속 의문=회계법인 등 외부 감사인들은 감사대상 기업이 앞으로도 계속 존속한다는 가정아래 자산과 부채의 가격을 평가한다.
그러나 누적결손금이 너무 많거나 숨겨진 채무가 많을 경우, 사업전망이 불투명해 존속능력이 불투명한 기업에 대해선 감사보고서상에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여부가 의문시된다는 의견을 덧붙인다. 회계법인은 계속기업의 존속의문 정도가 경미할 경우 감사의견에 이를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존속 불투명에도 불구하고 적정의견을 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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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lee@fnnews.com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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