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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출간한 박형규 교수] “톨스토이 문학은 국내 작가의 교본”


근대세계의 예술가, 사상가, 종교가 가운데서 톨스토이의 생애처럼 깊은 의미와 감동과 교훈을 준 사람은 흔치 않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문호로서 근대 세계문학의 거봉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사상가로서도 러시아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그 공명자들을 얻어, 이른바 인도주의와 무저항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톨스토이즘의 계승·실천자들에 의해 각국에 톨스토이협회가 세워졌을 만큼 현대의 예언자로까지 숭앙받으며 유럽 정신계의 위대한 중심이 되었다.

또한 종교가로서는 1901년 러시아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했을 만큼 형식에 얽매인 ‘국가’ 그리스도교와 ‘교회’ 그리스도교의 위선과 타락을 비판하고 ‘원시’ 그리스도교를 제창하면서 줄기찬 열정과 의지로써 진리의 탐구와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산상설교를 중심으로 한 자기완성의 고행을 평생을 통하여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여든 두 살의 노구를 이끌고 분연히 가정의 품을 빠져나와 진리와 실생활의 최후의 대조화를 향해 유랑의 길에 오르다가 한 시골역에서 이승의 삶을 마치기까지 철저하게 전인류를 위하여 전인류와 함께 전인류 안에서 살려고 한, 그의 내적 생활의 역사는 이미 하나의 숭고하고 비극성을 띤 전인류의 역사다.

이 같은 전인류의 괴로움을 괴로워한 그의 비극적인 생활의 역사는 그의 위대한 예술과 함께 전세계의 인류에게 남겨진 귀중한 유산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 유산을 올바르게 수용하고 계승함으로써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인류 최대의 문제에 대한 가르침, 최소한 그 암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 나라의 수많은 지식인과 독자들이 그 어느 나라에 있어서보다도 외국작가들 가운데 유독 톨스토이의 문학에 강하게 관심을 보였고, 자주 접촉해왔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초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민족문화말살정책을 펴던 시기와 1945년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난 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에 걸친 일대혼란 속에서 온 국민이 한 독립국가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는 열정으로 충만하던 시기의 극심한 정신문화의 공백 속에서 우리 나라의 독자들은 톨스토이의 ‘부활’ ‘민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인생독본(독서의 고리)’ ‘인생의 길’ 등을 통해 정신적 목마름을 식혀왔고, 윤리도덕의 규준을 세우며 지적·예술적 욕구를 채워왔던 것이다.

그리고 극도의 도덕적 타락과 정신문화의 빈곤이 엄연한 일상적 현실이 되어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시공을 초월해 톨스토이의 불후의 예술작품 주인공들의 체험과 운명 속에서 높은 예술의 향기에 젖는 가운데 우리 민족문화와 합치되는 것을 찾고 있다. 또한 민족문학 발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확실한 창작방법과 문학활동 방향이 요구되고 있던 20세기 전반 근대문학 형성기의 우리나라 문학의 정신생활에 영향을 준 많은 서유럽의 문학 가운데 러시아문학, 그 중에서도 톨스토이만큼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없다.

우리 나라의 근대작가들은 톨스토이에게서 삶의 진실의 묘사를 배우며 무엇보다 먼저 독특한 성실함, 진실성, 스타일의 정직성과 솔직성, 악의 과감한 폭로, 사회적 불공평과 사회결함의 비판의 무자비함 등등 그들의 마음을 끌었던 톨스토이적 리얼리즘의 예술원칙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또한 톨스토이에게서 인간의 감정과 체험의 세계를 깊이 통찰하는 기교-톨스토이적 심리분석의 특수한 형식, 작중 인물의 영혼의 지극히 비밀스러운 구석구석을 들추어내는 기교로서의 영혼의 변증법을 배웠다.

또한 도덕·심리적 문제를 사회적 문제와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주변 세계와의 복잡한 상호관계 속에서 작중인물들의 충실한 성격을 창조할 목적으로 심리분석을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그 대표적 작가로서는 춘원 이광수를 꼽을 수 있다. 톨스토이의 창작, 사상적 미학적 견해의 대부분의 특징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유달리 친근한데다가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우리 나라의 민족문화의 토양 위에서 쉽게 적응되어왔고 적응되고 있다.

또한 우리 나라의 독자들에게 있어서 톨스토이에 의한 사랑과 결혼,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암흑의 힘, 즉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물질의 힘, 완전한 아름다움과 진리의 이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 등등에 대한 주제의 해석은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이리하여 톨스토이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은 그를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더욱더 혈연적이며 친근하게 하는 낯익은 친숙한 많은 울림을 느껴왔고 느끼고 있다. 톨스토이 작품의 작중인물들은 이름만 다를 뿐 우리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친근하다. 톨스토이의 작품에서는 우리들 자신의 심장의 고동을 들을 수 있다.

1935년 춘원은 ‘조광’ 창간호에 실은 ‘톨스토이의 인생관’이라는 글 가운데에서 “톨스토이는 지구가 산출한 가장 큰 사람의 하나였다. 예수 이후 첫 사람이라 하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 그는 예술가였으나 그것이 그의 본령은 아니었다. 그는 사회와 인생의 비평가였으나 그것이 그의 본령도 아니었다. 그는 인류의 영적 혁명을 실행하고 선전하는 것으로 그 본령을 삼았다. 인류의 모든 불행이 악에서 오는 것을 믿어 이 악을 분쇄하여 지상에 인류의 이상향을 세우는 것으로 본령을 삼았다”며 톨스토이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정신문화는 피폐할대로 피폐해져 있다. 이러한 때 시공을 초월해 세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톨스토이의 정신세계를 우리와 조응시킨다는 것은 의미가 실로 크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폐쇄적인 기성세대의 냉담 혹은 무감각의 자성과, 비인간적 폭력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가치질서를 정립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톨스토이문학은 현대적 의의를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형규 전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