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의 대하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전10권) 완간
한국의 사마천을 꿈꾸었던 작가 이병주씨의 대하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碑)’가 1부(1∼6권)에 이어 2부(7∼10권)가 완간됐다. 이 대하소설은 작가가 방대한 사료와 날카로운 역사의식, 그리고 지적 편력을 정교하게 교직해 내놓아 문학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바람과 구름…’은 사실 대하소설이지만 소설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과 같은 난세를 살아가는 경영인들에게 최고의 지혜를 선사한다. 주인공 최천중이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기재와 인재, 그리고 호걸을 모으는 과정을 그린 이 대하소설은 ▲재물을 모으는 법 ▲인재를 모으는 법 ▲난세를 사는 법 ▲미래를 보는 법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까지를 망라하고 있어 경영인과 통치자들에게 인생교과서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지난 5월초에 출간된 1부가 주인공 최천중이 재물과 인재를 모으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에 출간된 2부는 세계 열강이 조선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혼란 속에서 최천중과 그를 따르는 17인의 재사들이 이상국가 건설의 실현을 앞두고 활약하는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은 주인공 최천중의 인재를 보는 안목이다. 신분사회의 틀을 깨고 문벌 위주에서 벗어나 각 분야의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을 발탁한다는 점에서 그의 인재관은 시대를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아도 상당히 이상적이라 할 만하다. 최천중 주위의 인재들을 살펴보면 무술에 뛰어난 자, 거짓말 잘 하는 자, 언변이 뛰어난 자, 기운이 센 자, 뜀뛰기를 잘 하는 자, 성적(性的)인 능력이 탁월한 자 등이 포진하고 있다. 말하자면 주인공 최천중은 신분이나 문벌을 가리지 않고 어느 한 분야에 능력만 있으면 그 재주를 버려두지 않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민비나 대원군,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등 사실에 입각한 주인공들과는 달리 최천중, 연치성, 하준호, 구철룡, 강원수, 박종태, 최팔룡, 유만석 등 실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당대 영혼의 역사를 드러내 보여주는 허구 인물들이다. 그런데 작가가 창조해낸 이 허구인물들은 모두 시대의 아웃사이더라 불릴 수 있는 기구하고도 박복한 인생을 사는 혁명가적 태생을 지니고 있는 점이 공통점이다. 독자들은 공포의 외인구단을 연상시키는 이 허구 인물들이 풍전등화같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대신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포부와 실천력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낸다.
작가는 생전에 ‘바람과 구름과 비’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당대 지식인들과 일부 지배층이 동학당과 합세해서 청국과 일본의 개입을 막고 혁명의 과정을 밟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국왕과 동학도가 손을 잡았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러한 가상 아래 있을 수 있었던 찬란한 왕국, 기막힌 공화국에의 꿈을 곁들여 민족사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도 이 대하소설의 상황과 엇비슷하다. 북한 핵위기의 해법과 관련해 세계 열강인 미국과 일본, 중국이 당사자인 우리를 제외하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것도 그렇다. 국가적 역량을 남김없이 탕진하고 자력갱생(自力更生)으로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차단함으로써 궁지에 몰려 미래의 운명을 일본, 러시아, 청과 같은 인접 국가들과 영국, 프랑스, 미국과 같은 세계 열강들에게 맡긴 결과가 어떠했던가.
격동하는 구한말에 한 청년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꼴을 누추하게 만들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늙은 조선을 뒤엎고 새 입헌군주국을 세울 웅대한 꿈을 품은 대하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 지금 우리가 이 대하소설을 읽어야 하는 것도 난마와 같이 얼킨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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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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