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국화인 분가라야 (bunga raya)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의 주 인종그룹과 사바와 사라왁주의 다양한 토착민들이 저마다 차별화된 고유색을 갖고 융합된 모습이 서로 섞이지 않는 짙은 원색 물감이 보기좋게 조화된 마티즈의 유화와도 같다. 이 유화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공화국. 3개의 나라가 공존하고 있는 보르네오섬에서도 볼 수 있다.
적도가 지나는 보르네오섬 북서쪽에 위치한 사라왁주의 제2도시 시부는 열대낙원도, 볼 것 많은 관광지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건물들과 맨발로 뛰어노는 아이들의 순수한 표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을 모토로 한다는 말레이시아의 속내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시부(SIBU)=쿠알라룸프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시간쯤 가면 울창한 정글림이 펼쳐진 사라왁주의 시부에 닿는다. 애초에 산호빛 파도가 넘실거리는 열대의 파라다이스를 상상한 것은 아니지만, 생전 처음 듣는 지역으로 여행한다는 사실에 내심 그런 곳을 꿈꿨나보다. 일행을 마중나온 버스…, 관광고속버스라기 보다는 ‘오라이∼’를 외치는 안내양이 어울림직한 6∼70년대 한국 시내버스 같다. 도대체 제대로 움직이기나 할까 염려하며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더운 나라여선지 에어컨은 빵빵하다. 버스안과 밖의 온도 차때문에 창이 뿌옇게 가려진다. 한 30여분쯤 달렸을까 허름한 호텔에 버스가 멈춘다. 짐을 풀고 실망스런 마음을 추스렸다. 어차피 해변에 누워 수영이나 하려고 온것은 아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는 버스안에서 눈도장 찍어놨던 농산물 시장과 라장강 주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라장장은 사라왁주에서 가장 큰 강이다. 강의 밑이 진흙으로 돼 있어 짙은 황톳빛을 띤 강에는 수상버스인 롱보트가 떠다닌다.
버스를 물위로 옮겨 논듯 길다란 모습을 한 이 배는 15링깃(RM)이면 원하는 대부분의 곳에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이용객은 강 건너편에 있는 원목공장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이다.
시부는 약간의 팁이면 왠만한 문제는 해결되는 도시다. 얼마간의 팁을 운전사 손에 쥐어 주고는 배 지붕위에 올라 앉았다. 하늘을 지붕삼아 항해하는 기분이 근사하다. 강변을 따라 공장처럼 보이는 길다란 굴뚝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나무를 베어 다른 곳으로 운반하는 공장이기 때문에 산업폐기물 같은 오염물질이 강으로 흐를 염려는 없다.
도시 곳곳에는 작은 마켓이 여기저기 형성돼 있는데 주로 과일과 생선, 나물 등을 판매한다. 말레이시아는 넘쳐날 정도로 과일이 많다. 수박은 1년내내 나고, 파파야도 1년에 두번 재배해 과일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지옥의 향과 천국의 맛을 지녔다는 두리안도 10링깃(한화 3300원정도)이면 실컷 먹을 수 있다.
◇롱하우스(이반족)=시부의 정글 깊숙이에는 보르네오섬 사라왁주에 사는 45개 원주민 중 최대 종족인 이반족(Iban)들이 아직도 많이 모여살고 있다. 하나의 롱하우스당 15∼60여 세대가 집단 거주하고 있는데 시부시내에서도 현대식으로 약간 계량된 롱하우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독특한 전통가옥인 롱하우스에 들어가려면 ‘투아이 루마’라고 불리우는 추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때 작은 선물을 주면서 허락을 구하는 것이 예의라 하니 인삼차나 담배 등을 준비해 가면 좋다.
사람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반족들은 혼쾌히 촬영을 허락했다. 롱하우스는 지상 3m의 높이에 기둥을 촘촘히 세우고 그위에 일자형으로 지어져있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계단을 오르니 집앞에 베란다가 있는데 여기에 나무를 얹어 놓아 베란다를 밟을 때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난다. 초인종을 대신하는 셈이다. 나란히 집 내부에 거실이 있다. 뻥 뚫려 있는 거실에서는 주로 곡식을 말리고 주민의 대소사를 의논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좋아 보인다. 안쪽으로 마치 아파트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문이 있다. 문 하나가 한 가구인 셈이다. 어림잡아 10여개 정도돼 보인다. 그중 한곳의 방문을 허락받았다. 자그마하고 지저분한 방하나가 덩그라니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문을 연순간 어이가 없다.
어엿한 거실이 나온다. 조금 더 들어가면 화장실이 또 들어가면 안방이 부엌이 다시 거실이…. 가로·세로로 롱 하우스인 셈인데 너무나 넓고 쾌적한 모습이다.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를 수가! 문화의 차이를 다시한번 실감한 순간이다.
과거에 이반족 남자들은 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종족들과 끊임없이 싸움을 해야했다. 싸움 뒤에 베어온 적의 목은 큰 자랑거리로 해골을 집에 걸어두며 용맹성을 자랑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사람사냥을 한 전사들에게는 문신을 새겨 주고, 베어 온 머리수 만큼 손가락에 줄을 새겼다고 한다.
지금도 50대 이상의 이반족은 온몸에 많은 문신을 하고 있는데, 손가락에 새긴 문신은 잘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하니 구태여 보고 싶다면 특별 선물을 이용해 보자. 말레이시아의 화폐단위는 링깃(RM)이며, 1링깃은 약 330원이다. 시간은 우리나라 보다 1시간 늦다. 말레이시아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9-4422
◇찾아가는법=말레이시아항공을 이용해 콸라룸푸르로(월, 수, 목, 금, 일요일 운항) 들어간 다음 시부행 국내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매일 2회 운항)
/시부(말레이시아)=
jinnie@fnnews.com 문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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