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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칼럼] 이공계 공직 진출의 방안 / 전창호 한양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지난 11일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방안을 제시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12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내세웠고 그에 관한 중점과제로 이공계 인력의 양성 및 활용을 추진해 왔다. 그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월21일 ‘과학의 날’ 기념식장에서, 또 이달 초 중국 방문 중에 가진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거듭 밝혀온 대로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과학기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기용하는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방안의 내용은 기술직 임용확대를 위한 공직 분류체계의 개편, 채용제도와 운영의 개선, 그리고 기술직의 정책결정 직위 및 보직 확대를 포함한 인사관리제도 운영 개선 등의 추진 과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5급 이상 공무원 중심, 기술직에 대한 차별제도 개선, 신규채용의 절반 이상을 과학기술 전공자로 충원, 시험과목 보강 및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신설, 5년 후 목표달성을 위한 연차적 시행 등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과학기술인력 제대로 활용못해

과학기술 수준에 따라 국가의 경쟁력이 가늠되고 있는 현실임에도 그동안 국가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있어 과학기술 인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왔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이공계 출신 공무원을 늘리고 그들을 국가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을 목표로 수립된 이번 방안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방안의 시행 효과가 극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사족을 달고자 한다.

첫째, 4급 이상 직위의 30% 이상, 5급 이상 공무원 신규채용의 50% 이상을 이공계에 할당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할당 비율의 하한선은 어떤 근거에서 책정된 것인지 궁금하다. 부처 별로 업무의 성격과 양에 따라 필요한 이공계 공무원의 수가 달라질 터인데 직무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용할당 하한선을 가지고 출발한다면 합리성이 없는 정책이 아닌가. 당연히 부처에 따라 다른 비율이 먼저 할당되고 총원 대비 비율이 산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5년 후를 목표로 다 채운다는 것이 너무 성급하지 않은가. 지금 중국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모두가 이공계 출신이고 10대 그룹 임원의 53%가 또한 이공계 출신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의 현 지위가 4, 5년의 기간 내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젊은 시절부터 20∼30년 이상의 현장경험과 조직의 내부 생리를 터득하고 그런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5년이라는 기간은 행정경험이 없는 이공계 전문가들을 국가의 중요 정책결정 참여자로 변신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 세월이다. 너무 성급하게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서두르다가 또 하나의 전시행정의 실패 사례를 남기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래성장동력 창출에 활용돼야

셋째,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과학기술 분야의 전공지식과 함께 공무원으로서의 소양과 사명감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정책관리 능력과 국가 행정에 관한 기본 개념 정도는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학위나 자격증을 소지한 이들을 특채할 경우 바로 보직을 부여하기보다는 먼저 체계적인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든지, 아니면 파견이나 자문 형태의 제한적 역할을 맡게 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대학의 이공계 학생들이 공공행정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함으로써 희망에 따라 미리부터 공직자의 소양을 기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에 내놓은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이 마치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방지하고 이공계 진학을 유도할 수 있는 처방인 것처럼 오도해서는 안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과학기술인들의 전문지식을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미래 성장동력의 창출에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며 정부의 과학기술적 행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그 가치를 가진다. 우리나라 공직체계상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행정의 전문성을 높임으로써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기틀을 마련하도록 다듬어지고 보완된 방안으로 시행되기를 바란다.

/전창호 한양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