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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온고지신] 商道 지키며 근검절약 몸소 실천


매헌 박승직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선천적으로 강한 체력을 가졌고 한번 뜻을 세우면 끝까지 관철시키는 집념과 추진력이 있었다. 상업을 천직으로 여겼으며 신중을 기하면서 ‘근자성공’(勤者成功)의 이념으로 계속 ‘일로매진’하는 삶을 살았다.

33세까지 포목행상을 하다 34세에 박승직 상점을 개점한 후 몇해 사이에 포목상계의 거물로 부상했던 매헌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타협정신, 인화정신, 근검정신, 민족자립정신으로 요약되는 그의 확고한 철학에서 기인했다.

19세기 말 상업천시사상이 사회에 팽패해있었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부의 축적방법으로 상업을 선호했다.

매헌이 왜 그토록 상업에 집착했는가에 관해서 장남 연강 박두병은 그의 생전에 “첫째는 부친의 지분지족 때문이며, 둘째는 상업으로 부를 축적해 일본이 식민지 백성인 조선인을 얕보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집념 때문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또 매헌은 “상인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그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는 것이다”고 늘 강조하며 상도를 지키기 위해 정치로부터 멀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정에서나 기업에서 매헌이 늘 강조했던 것은 ‘인화제일주의’였다. 이는 매헌 박승직이 평상시 좋아해 친구들을 비롯한 자식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다는 우화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옛날 슬하에 3형제를 둔 잘 사는 사돈과 못사는 사돈이 있었는데 못사는 사돈이 잘 사는 사돈더러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자 잘 사는 사돈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황소 한마리를 지붕위에 올리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이 떨어지자 3형제는 협력해 쌀가마를 갖다가 쌓아서 그대로 실행했다는 것. 하지만 못사는 사돈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명령에도 말대꾸와 핀잔만 늘어놨다. 못사는 사돈은 이것이 가난의 원인이라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매헌은 자신의 리더십과 인화를 강조하면서 경영 이념과 정신으로 삼았다.

매헌은 젊은 시절 엄청난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근검절약하는 몸가짐을 중시했다.


그는 1930년 동아일보와의 대담에서 “우리 상업계에 있어서 수량과 품질을 속이는 일이 절대 없기 바라며 긴축과 절약을 이행해야 되겠소이다. 술이나 담배중 어느 한가지를 끊어야 하며 나는 20여명 식구에 대해 벌써 금연을 단행하고 있는 중이외다”라고 말했다. 매헌은 열심히 노력해 수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절약가가 되는 것이 부자가 되는 첩경이라는 소박하면서도 필수적인 교훈을 현재의 경영자들에게도 전하고 있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