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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영 뉴욕포커스] 갈수록 벌어지는 美 빈부격차



얼마 전 쇼핑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이민상품에 모집인원의 20배가 넘게 몰렸다는 사실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빈부격차의 심화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계층이 늘어나는 것은 곧 정치적 불안정의 요인이 되며, 결국 경제에 부정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에서도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빈부 격차는 대를 이어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해외유학 비용으로 쓴 돈이 지난해에만 45억8000만달러로 교육부 1년 예산의 25%에 이른다. 유학생 상당수가 어떤 형태로든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는다고 하면, 매년 교육부 예산의 4분의 1정도가 ‘지식 자산’ 형태로 ‘상속’된다고 볼 수 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부유층과 저소득층 자녀들간에 교육기회의 불균등 현상으로 이어져 계층간 교육 및 지식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과학적으로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는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지난 2일 워싱턴 포스트지가 소개한 미국 버지니아대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인간의 지능지수(IQ)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사회적 계급(Social Class)에 좌우된다. 가난한 집안 출신 아이들의 지능지수가 다른 그룹에 비해 유독 낮은 이유는 인종이나 선천적 유전자보다는 빈부격차와 같은 후천적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계층간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소득 중 상위 20%에게 돌아가는 몫이 73년에는 44%였으나 2000년에는 50%로 증가했다.

최근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EPI)가 미국 의회 예산국이 발표한 실질 가구소득 통계를 분석한 결과 79년에서 2000년까지 21년간 최상위 가구 1%만 두배에 가까운 소득증가율을 보인 반면, 하위층이나 중산층 가구의 소득증가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상위 1%는 21년간 소득증가율이 184%에 달했으나 계층이 내려갈수록 증가율이 떨어져 중간층은 12.5%를 기록했고, 최하위층은 6.6% 증가에 그쳤다. 여기에 소유의 불균형은 소득보다 더욱 심하게 벌어지고 있다.

EPI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부의 38%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중산층까지 포함한 하위 80%는 고작 17%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 전체 주식가치의 85% 또한 상위 20%가 가지고 있다.

빈부격차는 교육의 양과 질에서 확연한 차이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입 수능시험(SAT)에서 공립학교 아이들은 평균 1011점, 카톨릭계를 포함하는 종교계 학교는 1057점, 최부유층 아이들이 재학하는 명문 사립학교는 1135점을 각각 기록했다.

부시 대통령 부자와 현재 플로리다주지사 젭 부시까지 3부자는 모두 ‘고등학교의 하버드’라는 필립스 아카데미 고교동창이다. 미국에는 이 학교뿐만 아니라 우수한 명문 사립학교들이 많다. 기초가 튼튼한 아이들을 풍요한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치니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전체 학력 아동의 10%에 불과한 사립학교 학생들이 명문 아이비리그 전체신입생의 45%를 차지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지식과 인맥, 물려받은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이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 10%의 엘리트가 미국 전체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밉든 곱든 이게 바로 미국의 힘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정보화 시대가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19세기 후반에 횡행한 계급간 갈등을 우려하기도 한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도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균형이 미국에 큰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경우 특히 취약한 사회보장제도를 생각할 때 중산층의 규모가 급격히 축소하고 있음은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빈부격차로 인한 국가적 위기가 닥치기 전에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 두는 일이 시급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삼영 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