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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영뉴욕포커스] ‘파병안 확정’결론 내라/정삼영 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여야 4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3000명 규모의 독자지역 담당 혼성군’을 골자로 한 파병안을 확정했다고 밝혀 반미단체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민간인들이 이라크에서 테러공격으로 희생당하는 일까지 생겨 파병의 찬반, 규모와 성격 등을 놓고 온 나라를 더욱 혼미하고 어지러운 상황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도 정부가 파병결정을 번복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라크의 평화회복과 재건을 파병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정부가 상황이 악화됐다고 해서 입장을 번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적 신의와 위신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국민이 정부가 내세우는 파병의 명분에 크게 호응하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 자체가 초강대국 미국이 도발한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지나지 않으며 미국의 요구에 정부가 마지못해 끌려가고 있다는 게 많은 국민의 상황인식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가리켜 ‘신사대주의’나 ‘노예근성’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이야말로 자격지심과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내외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 그리고 반세기에 걸친 군사동맹국가인 미국이 지금 이라크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전쟁이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들도 난감해하고 있다. 당초 예상대로라면 지금쯤이면 전후복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할 단계이고 세계가 미국의 업적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베트남전 이래 가장 위험한 국면이다. 폐허가 된 이라크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수백억달러가 더 필요하며 기본적인 치안유지와 공공사업의 복구를 위해서도 훨씬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한미군을 포함해 이미 전세계에 군대를 파견해 놓은 미국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14만명의 병력 이외에 추가파병을 할 여건은 안된다. 베트남 확전이 초래한 결과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미국 여론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 포기하고 지금 당장 미군을 즉각 철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미군의 철수에 따른 갑작스러운 치안공백은 무정부상태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고 이는 전쟁의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자유와 평화도 잃고 정권교체도 허사로 만들 것이다. 전쟁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미국이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이 동맹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런 요청에 응해 파병을 결정했다면 정부가 나서서 우리가 자주적인 판단에 의해 동맹국을 돕고 전쟁의 참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 국민의 주권 회복을 위해 파병한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민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불분명한 경제적 실익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떼밀려 파병한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도움을 받는 미국이나 이라크뿐만 아니라 파병을 나가는 우리 군의 사기와 명예에도 결코 득이 될 수 없다.

파병요청을 정식으로 받은 동맹국의 입장에서 파병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복잡한 문제이므로 대내외 변수를 신중히 검토해 파병부대의 안전과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 실익만을 따질 경우 당장의 직접 이득을 산출해 내기는 어려우며 성급히 결론 내릴 문제도 아니다.

주식시장, 채권시장 등 자본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파병이라는 변수가 차지하는 영향은 아마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직접 나서 경제 실리를 언급하며 파병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한국전쟁 때 수만명의 미군이 한국이라는 동맹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피흘려 막아냈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그 당시 미국이 만일 경제적 이해득실 등 국익만을 고려했다면, 그래서 한국전 파병이 지연됐다면 지금쯤 한국정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3000명 규모의 독자지역 담당 혼성군’ 파병안을 확정한 만큼 국회는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 제출되는 즉시 결론을 내야 한다.

한국은 이제껏 이라크 파병 문제와 대통령 재신임, 대선자금 수사 등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을 날로 키워왔다.


시장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진정으로 국가의 경제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불확실성을 하루 빨리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토론과 여론 수렴’이라는 명분 아래 장기간 방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삼영 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