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칼럼] ‘IT비전 2007’에바란다/전창호 한양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한해가 저물고 있고 또 새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우리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낱말을 자주 쓰게 된다. 우리 정부로 봐서도 인터넷과 정보통신 분야에 관한 한 금년은 역시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이 점철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몇가지만 돌이켜보자. 먼저, 1월의 달력을 넘기기도 전에 슬래머웜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이 거의 전국적으로 마비되는 대소동을 겪었었다. 이 사상 초유의 사태는 우리 국민들에게 인터넷의 취약성과 그 침해사고의 치명성을 실감시켜 주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고의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어서 인터넷 쇼핑몰이나 PC방 등 인터넷에 의존하는 사업자들이 입은 금전적 손해에 대한 배상 문제는 아직도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2월에 들어서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도입 문제를 두고 전교조를 비롯한 일부 학부모시민단체가 교육인적자원부와 극단적으로 맞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행정업무효율과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빚어진 대립 상황은 지난 15일 국무총리실 산하의 교육정보화위원회가 개인정보를 다루는 세개 영역을 분리 운영하도록 한 중재안을 제시할 때까지 10개월간 계속되어 왔었다.

3월 말부터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시행하려는 정보통신부 및 그 지지자들과 그 반대 입장에 있는 네티즌을 포함한 시민단체들 사이에 벌어진 공방도 사이버 문화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홍역이었다. 이 역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고 정통부가 한걸음 물러서서 실명제 시행 방침을 보류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9월 말께에 다시 불붙기 시작한 지상파 디지털TV의 방송방식에 대한 정통부와 방송기술인단체 사이의 논쟁은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고 결국 금년 말에 광역시까지 본방송을 실시하기로 계획되었던 추진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또, 이달 초순에는 경찰청의 교통전산시스템이 사흘간이나 멈춘데 이어 행정자치부의 주민전산망이 일시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이용환경을 갖춘 정보기술(IT) 강국이니 전자정부 구현 선도국이니 하는 평판에 오점을 남겼다.

이렇듯 여러가지 예기치 못했던 사태를 겪은 한해를 보내면서 정보통신부가 지난 17일 ‘Broadband IT Korea Vision 2007’이라는 이름으로 참여정부의 정보화촉진 및 정보통신 발전 전략을 내놓았다. 전자정부가 출범함에 따른 환경의 변화와 지난 1월의 인터넷 대란에서 얻은 교훈을 수용하여 기존의 ‘e-Korea Vision 2006’을 수정 보완하면서 참여정부의 IT비전을 담은 것이라 한다.

거기에는 정보화의 질적 성과, 정보화의 역기능 대책, 선도기술 개발역량 등 현재 미흡한 부분에 대한 분석과 그에 대한 대응 전략이 들어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과 디지털 복지사회 구현 등 향상된 삶의 질을 상징하는 목표도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목표연도인 2007년에는 전자정부 민원업무의 85%가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150만명의 인구가 정보통신 직종에 종사하게 되며, 전가구의 74%가 디지털TV를 보유하여 세계정보화 순위가 10위 이내에 들게 될 것이라고 청사진을 그려 놓았다.

여기서 우리는 멋진 비전을 제시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운 계획을 책임감과 일관성을 가지고 실행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평범한 상식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잘 짜인 계획이라 하더라도 안이한 추진 방법이나 흔들리는 시행 의지로는 결국 성공을 이루지 못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말 것이다. 앞에서 돌이켜본 사건들도 대부분 치밀하지 못한 시행 과정과 미온적인 대응으로 인해 차질이 빚어졌거나 실패로 돌아가게 된 사례들이라고 본다.
이번에 제시된 비전과 전략도 보기 좋은 수치와 듣기 좋은 관용구로 포장된 것이 아닐 터인 만큼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철저하게 실천해 나간다면 기대하는 결실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약 2주일 전, 우리나라 교수 사회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우왕좌왕(右往左往)’이라는 사자성어로 풀이했다고 하는 보도에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내년 연말에 가서 비슷한 설문을 실시할 경우 적어도 정보통신 분야 만큼은 ‘초지일관(初志一貫)’, ‘승승장구(乘勝長驅)’ 등의 긍정적인 말로 풀이되는 2004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전창호 한양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