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

압구정 현대아파트 슬럼화 고민


한국의 아파트문화를 선도했던 서울 강남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재건축·리모델링의 어려움으로 자칫 도심속의 흉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건설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서울시의 수변경관지구 제한 등 갖가지 규제에 막혀 재건축이 불가능하다. 리모델링도 계단식 아파트라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따른다.

◇“재건축·리모델링은 엄두도 못내”=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한강 수변경관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조례’가 재건축을 가로막고 있다. 조례(제41조)는 수변공간의 건축물은 높이와 층수를 제한하고 있다. 이 규정에 의해 실제로 현대아파트를 재건축하려면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하는 등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또 현행 제도상 재건축 가구의 60% 이상을 소형 평수로 만들어야 재건축 허가가 나기 때문에 대형평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아파트는 재건축이 더욱 어렵다.

현지 G공인의 관계자는“사실상 재건축을 금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현대아파트에는 재건축은 엄두도 못내고 그냥 이대로 살자는 주민들의 자조섞인 체념만 가득하다”고 전했다.

까다로운 재건축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강남지역은 리모델링을 선호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계단식 아파트가 많아 리모델링 조차도 어렵다. 복도식 아파트가 리모델링을 통한 공간확장이 용이한데 현대아파트의 상당수는 ‘계단식’으로, 리모델링 비용에 비해 얻는 이득이 적다는 것이다.

압구정동 S공인 관계자는 “대림산업에서 소규모로 리모델링 사업을 마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리모델링도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아파트가 구조적으로 리모델링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선 그냥 낡아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전했다.

◇“근시안적 규제가 문제”=한국 최고의 아파트였던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심의 흉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을 비난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이정전 교수는 수변경관지구 규제에 관해 “미국식으로 건물 높이 등 양적인 면을 중심으로 제한하는 것은 역기능이 더 크다”며 “독일·프랑스의 경우처럼 멀리 내다보고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질적으로 제한하는 규제로 바뀌어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창용 교수는 재건축시 60%를 소형 아파트로 지어야하는 의무에 관해 “강남의 집값을 잡고 서민 주택을 많이 보급하고자 하는 당국의 선의는 강남 재건축을 막아 주택공급 부족으로 부유층과 서민층 모두 불만을 가지는 악의로 이어졌다”고 정책의 합목적성 부족을 지적했다.

이교수는 “강남에 큰 아파트를 자유롭게 짓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세금으로 다른 쪽에 서민 아파트를 많이 보급하는 것이 실효적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압구정 현대, 어떤 곳인가=지난 76년부터 82까지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다. 50∼60층의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기전까지는 서울지역 최고가 아파트 단지로 ‘강남불패’의 중심을 지켜왔다. 지난 2000년까지만해도 한번도 최고가 아파트의 지위를 내놓은 적이 없었다. IMF시기의 일시적인 가격 조정국면을 제외하고는 시세가 끊임없이 올라 부동산 강남불패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발전하는 기술과 주거문화의 변화로 오늘날 현대아파트는 구식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다. 도곡동의 타워팰리스나 아이파크 등에 비해 시설이 낡았고 성냥갑 형태의 아파트 외관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가 녹지공간과 휴식공간을 중요시하는 것과는 달리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자투리 땅은 상당 부분 아스팔트 주차장이 차지하고 있어 요즘의 라이프스타일과 거리가 멀다. 때문에 현대아파트는 지난 2000년이후 최고가 아파트의 지위를 타워팰리스, 아이파크 등에 내주고 말았다.
강남 주택지의 중심도 압구정동에서 대치동,도곡동, 경기 성남 분당 등으로 옮겨갔다.

/ lhooq@fnnews.com 박치우기자

■사진설명

국내 아파트문화를 선도했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수변경관지구 제한’등 갖가지 규제에 갇혀 재건축·리모델링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대로 가다간 자칫 도심속의 흉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