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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르네상스 문을 열어젖힌 거인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에는 거인 팡타그뤼엘의 입안에 건설된 세계에 대한 유명한 설명이 나온다. 거인 팡타그뤼엘의 입안은 수십리에 이르러 그 안에는 커다란 경작지가 딸린 마을과 교회가 있고, 거인의 이빨들은 마치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싼 산악지역을 방불케 한다. 거인의 입안에 대한 ‘탐험’은 르네상스시기의 신세계 발견이라는 모티브를 희화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극도의 과장과 탐닉적인 행위를 가벼운 필치로 그려낸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거인 팡타그뤼엘과 그의 아버지 가르강튀아의 이야기는 저자인 프랑수아 라블레(1494∼1553)의 애너그램인 ‘알코프리바 나지에’라는 가명으로 1532년 리옹에서 발간되자마자 불과 두달만에 그 당시 9년동안에 팔린 성서의 숫자보다도 많이 팔렸다.

거인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의 모험 이야기는 원래 프랑스의 민담에서 유래한다. 두 거인은 낯선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가는 곳 마다 비축된 식량들을 모조리 먹어치우면서 환상적인 모험을 펼친다. 중세적 금욕과 규율적 삶에 진저리를 치고 있던 민중들에게는 주인공들의 현란한 탐닉과 방종이 친근하게 다가올수 있었다. 라블레의 작품에서는 일상적 현실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환상속에 놓여 있고 거칠고 천한 우스개 농담이 박식으로 가득차 있으며 도덕적인 철학적 교화는 음란한 음단패설과 함께 흘러나온다.

라블레의 생애에 대한 그리 많지 않은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처음 그는 프란치스코파의 수도승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유입된 고대 그리스의 학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보여 교단과의 마찰을 빚었고, 베네딕트수도회로 이적한다. 헤로도투스의 책을 번역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하는데, 중세적 신학관을 고수하던 당시의 보수적 신학자들은 엄격한 사상통제를 시도하였던 것 같다. 이후 의학 공부에 매진하였던 라블레는 결국 환속하게되고, 그는 20여년간에 걸쳐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이야기를 장장 5권에 걸쳐 집필하기에 이른다.

라블레는 과장된 거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중세적 질서와 사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하였다. 중세의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인간육체의 과장과 희화와는 달리 라블레의 ‘동물적 리얼리즘’은 중세적 종교적 지배에 대한 휴머니즘적 반역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중세 후기에 만연하였던 육체의 동물적 처리가 신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폭로하고자 하였다면, 라블레의 거인은 중세적 금기와 제약을 깨트리는 초인적 인간상에 대한 기대감에서 출발한다.


“라블레의 웃음은 저 별들에게까지 닿으며 우리들 영혼의 심연까지 채워준다”고 빅토르 위고는 말한다. 라블레의 과장된 이야기 속에는 단지 농담과 우스개 소리만이 아니라, 그 어떤 진지함도 감춰져 있다. 이로써 라블레는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으며, 그의 거인들은 근대로의 문을 힘껏 열어재끼고 성큼성큼 세계문학사에 그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김영룡(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