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책벌레의 책돋보기-자밀라]한폭 그림에 담은 형수 시동생 사랑이야기


칭기스 아이트마토프의 초기작품 ‘자밀라’(1958)는 과거 소비에트권 문학중 서방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58년 처음 발간되자 마자 당시 국내외의 극찬과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었는데, 특히 1959년 불어로 번역한 루이 아라공은 번역본의 서문에서 이 소설을 ‘세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평가한바 있다.

아이트마토프는 당시 소련에 속해 있던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셰케르에서 1928년 출생하였다. 일찍이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아버지를 잃고 장남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이트마토프는 고향의 농업학교를 마치고 축산기사로 일하면서 글쓰기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트마토프는 1951년부터는 기자생활을 하기도 하는데, 이후 재능을 인정받아 모스크바의 고르끼 문학연구소에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고, 작가 동맹에도 가입하게 된다.

‘자밀라’는 고르끼 문학연구소의 졸업작품으로 발표되었는데, 아이트마토프 문학세계의 특징인 고향 키르기스스탄의 목가적인 전통과 비가적 정조를 인류사적 보편성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스탈린 사후 팽배한 이제껏의 교조주의적인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대한 거부감과 맞물려 의외의 성공을 거둔다.

‘자밀라’이외에 ‘안녕, 귈사리’, ‘백년보다 긴 하루’, ‘카산드라의 낙인’ 등의 작품은 여전히 세계적인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자밀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젊은 남자들은 모두 독일군과의 전선으로 징집되어 나가고 아녀자와 노인네들만 남아 있는 북동부 키르기스스탄의 어느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이야기 속의 화자인 15세 소년 사이드는 어린 형수 자밀라와 귀향군인 다니야르 사이의 사랑을 어렴풋이 그려나간다. 사랑보다는 관습에 의해 결혼한 남편 사득이 군에 나가있는 동안 여리지만 생활력 강한 자밀라는 전장에서 부상당한 채 되돌아온 귀향 군인 다니야르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발견한다.

이제 막 사랑의 감정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사춘기 소년 사이드의 눈에 의해서 묘사되어지는 두 사람의 애정행각, 그리고 전통적인 인습에 반항하여 사랑을 위한 도피를 감행하는 자밀라의 자아찾기 과정이 너무나도 낯선 중앙아시아의 풍광과 관습에 대한 묘사와 어울어져 아이트마토프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를 이룬다. 단지 어린 사이드만이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이해할뿐이며, 말로는 형용할수 없는 이 두사람의 사랑의 감정을 그림으로만 그려낼 수 있음을 깨닳는다.


두 사람이 마을을 떠나던 날 사이드는 한점의 그림을 완성한다. 이후 그림 공부를 위해 마을을 떠나게 된 사이드는 비로소 깨닳는다. 자신이 자밀라에게 품고 있었던 마음이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을. 사이드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들에 자밀라의 심장이 박동치기를!’

/김영룡(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