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문화 >

[캄보디아 시엔립 앙코르 유적지]앙코르 제국 ‘전설의 고향’


길고긴 식민지배와 내전의 고통을 호소라도 하듯 차량은 뿌연먼지를 머금고 비 포장도로를 불안하게 달린다. 흔들리는 차창 밖 풍경은 좀처럼 법과 제도에 서툰 광경이다. 폭력 자제를 외치는 당국의 ‘일침’은 거리 한 모퉁이의 간판을 큼직히 차지하고, 외국인을 상대로 한 나약한 빈민들의 ‘달러’ 외침은 쉴틈없이 귓가를 전전한다.

그러나 크메르, 캄푸치아 그리고 캄보디아 등 이름만큼 혼란스럽던 이 땅에 유구하고 진보화된 문명이 자리 잡았다는데 대해선 자못 경외감이 솟구친다. 불교와 힌두교의 영적교류가 스며있는 이 곳에 세계 7대 불가사의 문명인 앙코르 유적지가 나타난다.

캄보디아 북서부 도시 씨엔립에 위치한 앙코르 유적지는 크게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으로 나뉜다. 입구 양쪽에 연못 두개를 낀 채 5개의 중앙탑이 버티고 있는 앙코르 와트는 전체 2층 규모의 회랑으로 구성된다. 특히 300m가량의 긴 수교를 가운데 두고 양옆에 펼쳐진 작은 연못은 앙코르 전체 전경을 비추며 극도의 미적 감각을 곧추 세운다.

각 회랑에 새겨진 다양한 부조들은 어렴풋한 옛 전설을 고이 담고 있다. 라마 왕자가 납치당한 아내를 찾는 무용담인 ‘라마야나 이야기’, 왕가와 종형제가 왕권을 놓고 사투를 벌이는 ‘마하바라타 이야기’ 등 고대 이야기는 자뭇 흥미를 끈다. 수천개에 달하는 이 부조는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있어 앙코르 예술의 극치로 평가받는다. 다만 수차례 탁본을 떠 부조 벽면이 일부 닳은 점이나 옛 폴 포트 정권 당시 발생한 총탄 흉적 등은 경솔한 ‘문화 폭력’으로 와닿는다.

앙코르 와트에서 동쪽으로 2㎞가량 이동하면 앙코르 톰을 만난다. 하늘에서 보면 정확히 가로·세로 각각 3㎞의 정사각형 모습이다. 주위는 모두 높은 성벽에 둘러싸여있다. 성곽 남문은 거대한 얼굴 조각상으로 관광객을 맞는다. 이는 부처와 13세기 캄보디아를 통치했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함께 형상화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특히 남문 주변에는 부처상과 힌두교가 중시하는 코끼리의 모습이 함께 발견돼 두 종교를 함께 용인했던 앙코르 제국의 ‘관용’이 스며있다.

앙코르 톰 중앙에 위치한 바이욘은 앙코르 예술의 극치를 발한다. 한동안 미소를 잃었기 때문일까. 수백개에 달한 바이욘상이 무표정한 얼굴로 곳곳에 새겨져 있지만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한 미소띤 바이욘상에는 좀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끊이질 않는다. 앙코르 톰 역시 앙코르 와트와 마찬가지로 문화유산에 대한 인간의 ‘무지’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지난 80년대 일본 설계사들이 앙코르 톰 해체�^복원 작업에 나섰다가 실패한 것. 때문에 앙코르 톰 곳곳에는 수백년의 풍화를 겪으며 자산가치를 담아온 소중한 석상들이 제 갈곳을 잃은 채 나뒹굴고 있다.

이처럼 광대한 유적에도 불구하고 사실 앙코르에 대해선 어떠한 문헌이나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앙코르 유적을 불가사의로 부르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때문에 외계인 제작설, 노예 반란설, 샴족 침공설, 전염병 발병설 등은 앙코르 유적 주변을 내내 따라다닌다. 누가 이것을 만들었고, 어디서 재료를 가져왔으며,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는 단지 말없는 석상들만이 알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앙코르 유적에 관한 정보는 순수 학문적 견해에서 밝혀진 가설에 불과하다.

추측을 근거로 한 학계 자료에 따르면 앙코르 유적지는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왕위기간 앙코르 와트를 건설한 것으로 시작된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태국과 인도네시아등에 종종 시달리던 크메르를 단숨에 강국으로 성장시킨 위대한 통치자로 손꼽힌다. 학자들은 앙코르 와트가 수리야바르만 2세 당시 왕궁이었지만 죽고 나서는 무덤 혹은 사원이 되면서 신과 왕의 단일 모습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려 했다고 설명한다. 수리야바르만 2세 사후 자야바르만 7세에 달해서는 앙코르 톰, 바이욘, 코끼리 테라스 등 유적지 건설이 활발히 전개된다.
중국과의 해상무역이 늘어나고 크메르의 대외 활동이 커지면서 16세기경 한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처음으로 앙코르 유적지가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같은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아득한 전설과 고대의 영혼이 함께 깃든 앙코르의 숨결을 찾아나서는 것은 어떨까. 벽화속에 스며있는 안락과 극락의 소중한 내세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캄보디아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갈등과 고통, 번민과 성찰의 발자취를 이 곳 앙코르 유적을 통해 귀 기울여 보자. 화해하며 이해하는 슬기로운 타협은 당신들의 조상 ‘크메르의 미소’속에 조용히 담겨 있는 듯 하다.

/ sunysb@fnnews.com 장승철기자

■사진설명

우뚝 솟은 거상이 엄청난 위용으로 입장객을 맞고 있다. 앙코르 톰 출입문 중 가장 웅장한 남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