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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 소설속 주인공이 된다…작가와 함께 떠나는 문학 기차여행



『“이 자식아, 일 하다 말면 누굴 망해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 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김유정 ‘봄봄’ 중에서)

『“닭 죽은 건 염려마라. 내 안 이를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둥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움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듯이 왼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김유정 ‘동백꽃’ 중에서)

지난 24일 무더운 여름의 열기를 가르는 KTX 특별객차 내에서는 시인 이상(1910∼1937)과 함께 한국문학의 천재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대표작품을 낭낭한 목소리로 낭독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졌다. 교보문고와 KTX관광레저㈜가 마련한 ‘유명 저자와 함께 떠나는 문학 기차여행’에 몸을 실은 110명의 교보북클럽 회원들은 35도를 오르내리는 수은주에도 아랑곳 없이 ‘지식의 음식’인 책의 향기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특히 신화학자이자 소설가인 이윤기씨(58)의 감칠맛 나는 낭랑한 육성이 차내 방송을 통해 객차에 울려퍼지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나왔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세요.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우리의 목적지인 김유정역에 도착할 때까지 작은 도시 춘천이 배출한 걸출한 작가 이외수, 최승호, 전상국, 오정희, 최수철, 그리고 한국문학이 배출한 천재작가 김유정의 작품을 떠올려보세요.”

두 시간 가까이 객차 내에 마련한 이벤트칸에는 1930년대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李箱)과 ‘천재작가’ 김유정(金裕貞)에 대한 특강과 함께 퀴즈대회가 열렸다. 이상이 대단히 한국적이면서도 대단히 서구적인 세계화된 시인이라면, 김유정은 강원도의 정선아리랑을 들려주는 것 같은 너무나 토속적인 작가라는 게 이윤기씨의 촌평이다.

“‘산도 끝나고 물도 끝났네/길이 없는줄 알았더니/버드나무 끝 또하나 마을이 있었네.’라는 중국의 한시가 있어요. 이처럼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면 ‘글마을’이 탄생합니다. 앞으로는 연두색은 녹두인절미색, 파란색은 동해바다색, 노란색은 유채꽃밭색으로 인식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도 문학의 세계와 진정으로 합류할 수 있지요.”

소설가 이윤기씨의 열띤 강의를 들으며 어느덧 김유정역에 도착했다. 강촌과 남춘천 사이에 자리 잡은 김유정역은 지난해 12월 철도청에서 한 인물의 이름을 딴 국내 최초의 역이 되었다. 김유정역에서 200m를 걸어 실레마을로 들어서면 김유정문학촌이 나타난다. 김유정문학관이 아니라 김유정문학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배경에는 작가 김유정과 그가 나고 자란 신동면 실레마을이 실제 상황과 고스란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백꽃’의 무대인 금병산 기슭, ‘봄봄’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김봉필의 집, ‘산골 나그네’의 덕돌네 주막과 물레방아, ‘만무방’의 노름터 등을 직접 거닐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김유정의 작품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우직하고 순박하며, 어쩌면 바보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남편있는 여인이 시골주막으로 돌아다니며 술과 몸을 파는 들병이가 되거나 노름꾼들의 사뭇 어이 없는 순박한 삶이 구수한 토속어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김유정은 천재작가 답게 이곳 실레 마을의 자연, 또 여기에 딱 어울리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마치 여유작작한 구경꾼처럼 그들의 입담 그대로 에누리없이 옮겨놓고 있는 것이다.

일행은 천재작가의 작품배경을 뒤로 하고 버스로 남이섬 선착장으로 이동, 10분 가량 배를 타고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한 남이섬에 당도했다. 청춘남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남이섬은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는 문화마을로 다가왔다.


최정희씨는 “창 밖으로 보이는 백일홍, 해바라기 하며 고추잠자리가 잠깐이나마 유년기 시절의 추억으로 이끌어 너무나 행복한 문학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문학 기차 여행’은 30일 소설가 정찬주씨와 함께 ‘정선 아리랑’의 고장 강원도 정선을 찾고, 오는 8월7일엔 가수 겸 소설가 이적씨와 함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봉평으로 떠난다. 참가비는 5만∼7만원으로 교보북클럽 회원인 경우 50%의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02)397-3432

/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