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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교역과 원조의 신화/대니 로드릭



교역과 원조라는 말은 국제 유행어가 됐다. 가난한 나라를 (부채탕감을 포함해서) 더 많이 도와주고 그들이 만든 제품을 부자 나라들의 시장에 내다 팔게 해주는 것은 이제 가장 중요한 세계적인 과제가 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최근의 논쟁은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가’가 아니고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빨리’ 도움을 줘야 하는가로 옮겨졌다.

이같은 논쟁 속에서 우리는 지난 50년에 걸친 경제발전을 통해 얻은 명백한 교훈을 놓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경제발전이란 대체적으로 가난한 나라들 자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년 동안 발전을 이룬 나라들은 자체 노력으로 성과를 일궈냈다. 원조를 제공하고 선진국 시장을 열어준 것은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웃나라 시장에서 특혜를 받으면서 자유롭게 물건을 파는 개발도상국을 생각해보자. 그 큰 이웃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덧붙여 이 개발도상국은 국민 수백만명을 이웃 국경 너머로 보낼 수 있으며. 방대한 양의 투자도 지원받고, 국제적인 생산망까지 완벽하게 연결돼 있다고 가정하자. 나아가 이 이웃 부자 나라는 만약의 경우 최후의 대출자로 나설 것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줌으로써 이 개도국의 금융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아무리 글로벌화한다 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또 다른 나라를 생각해보자.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과의 교역이 금지된 상태다. 서방국가로부터 어떤 종류의 도움이나 외부 원조도 받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에도 가입돼 있지 않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도 없다. 이 정도 외적인 불리함이 이 나라에 장애요소로 충분하지 않다면 이 나라는 국제무역에서 (국가가 간섭하는 무역, 수입관세, 수입량 제한 등의 형태로) 스스로 높은 무역장벽을 세워놓고 있다.

독자들이 추측한대로 두 나라는 멕시코와 베트남이다. 멕시코는 2000마일에 걸친 국경이 미국과 맞닿아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 상품과 노동 분야에서 최혜국 수준의 시장접근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미국 재무부가 지닌 자원에도 접근을 허용하고 있다(이는 지난 95년 멕시코 금융위기 때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지난 94년까지 베트남에 대한 무역 금수조치를 유지했고 95년에야 외교관계를 맺었다. 수교 후에도 미국은 베트남산 수입품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제공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아직 WTO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제 멕시코와 베트남 두 나라의 경제실적을 살펴보자. 멕시코는 지난 92년 12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이래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이 연평균 겨우 1%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는 아시아 경제대국들의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을 한참 밑도는 것은 물론 지난 82년 채무위기 이전 수십년에 걸쳐 멕시코가 이룩한 증가율과 비교해도 아주 미약한 수준이다. 멕시코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60년에서 81년까지 한해 평균 3.6% 증가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경제개혁을 시작한 지난 88년부터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95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이 연 5.6%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도 4.5%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멕시코의 실질임금은 떨어지는 반면 베트남은 빈곤이 극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다. 두 나라 모두 국제무역과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또렷하게 갈렸다. 생활수준의 향상,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이 그것이다.

이같은 예는 한 나라의 내부 노력이 그 나라의 경제 운명을 결정하는 데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시장은 멕시코에 모든 기회를 제공했지만 멕시코가 정책 실수로 만들어낸 결과를 메울 수는 없었다. 멕시코는 특히 페소화 환율이 실질적으로 절상되는 것을 막는 데 실패했고 수출부문에서 이룩한 생산성 향상을 경제의 다른 부문에 확산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나라가 적절한 성장전략을 도입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베트남은 멕시코가 가진 장점이 하나도 없지만 경제발전을 다변화하는 전략과 내수 공급자들의 생산량을 개선하는 방안을 추구했다.

정책을 어떻게 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은 전후 여러가지 사례가 뒷받침한다. 한국은 정점에 이르렀던 외국 원조가 단계적으로 줄어드는 시기였던 지난 60년대 초 경제발전에 시동을 걸었다. 대만도 외국 원조나 시장 특혜를 받지 않았다. 오늘날 양대 경제대국으로 불리는 중국과 인도는 독자적인 개혁을 통해 엄청나게 번성하고 있다.

드문 경우로 보츠와나와 모리셔스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외국 시장에 각각 다이아몬드와 섬유를 수출해서 성공했다는 점은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까지가 한계다. 외국 시장에 물건을 팔지 못하면 두 나라는 더 가난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성공적인 발전사례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들이 지닌 외적인 장점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다른 나라들이 엉망이 된 것을 보라.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라는 단어는 결코 번영이나 평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세계에 있는 수출가공지역 가운데 모리셔스가 섬유 수출로 보여준 결과를 이룩한 것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부자 나라들이 도와줄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부패한 독재자들이 살기 힘든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금융정보를 더 많이 공유하고 그들이 서명한 국제 계약을 인정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이 부자 나라에서 더 많이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WTO 규정과 미국의 융자조건을 완화해서 성장지향적인 정책을 제공하는 것은 빈국들의 장기적인 발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접근을 쉽게 하고 원조를 늘리는 것이 잘 사는 북반구의 귀중한 정치적 자본을 가장 생산적으로 이용하는 것인지는 결코 분명치 않다. 개발은 무역과 원조가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의 정책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리= cameye@fnnews.com 김성환기자

Copyright: Project Syndicat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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