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생각해요. 난 엄마를 닮았을까, 아빠를 닮았을까. 형제가 있다면 예쁜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요. 전부 김치국 마시는 소리지만….”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리는 이헌씨(23·1983년 12월2일 출생)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을 찾고 있다. 기록상으로 그는 다섯살이던 87년 5월4일 서울 상계동 상계파출소로 인계되었다. 중간에 서울시립아동병원과 녹원영아원을 거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 후 이씨는 서울 소년의집에 잠시 머물다가 부산 소년의집으로 보내져 고등학교 때까지 생활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록이 말해줄 뿐 부산 소년의집 이전의 일을 이씨는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다. “몸에도 그다지 특별한 흔적은 없어요. 오른팔 안쪽 손목 위에 점인지 불에 데인 흉터인지 흔적이 남아있고 체격에 비해 손이 좀 큰 편이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까지만 해도 부모는 ‘죽도록 미운’ 원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던 지난 2003년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척추골절과 장파열로 중환자실에 한달을 지낼만큼 큰 사고였다. “사람이 참 간사하죠. 죽을 고비까지 넘기고 생활이 힘들어지니 혼자인게 너무 싫었어요. 내내 부모님 생각만 들었죠.”
그는 몸이 회복되자 부모를 찾아나섰다. 친구들을 모두 동원해 기록에 남아있는 시설에 전화를 해보고 가족을 찾아주는 TV 프로그램에는 모두 신청서를 냈다. 병원에서 DNA 검사를 하고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매일 전화를 걸고 있다고 했다. “종일 어떻게 하면 찾을까만 고민해요. 하지만 자료가 너무 없어요. TV 프로그램은 부모님 이름을 모르면 신청이 안된다 하고 DNA는 일치하는 사람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막막하고 힘들죠.”
이씨는 실종 신고도 하지 않고 DNA 검사도 하지 않은 부모가 조금은 원망스럽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것 같아요. 힘들게 살고 있다면 제가 보살펴 드릴테지만 편하게 살고 있으면 한번 보는 걸로 만족할거예요. 부담이 될 수도 있잖아요.”
사고 후에 그는 매일 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할 때 만큼은 답답한 현실을 모두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 각오가 됐냐고 물으니 그가 큰 손을 눈 앞에 쫙 펼쳤다.
“생명선이 길죠·고아들은 원래 목숨이 9개라서 끈질기게 오래 산데요. 하지만 난 40살 쯤 죽고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다시 태어나면 부모님이랑 평생 조용한 산골에서 농사지으면서 같이 살거예요. 찢어지게 가난해도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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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lee@fnnews.com 이세경기자
■사진설명=당시 5세이던 이헌(앞줄 왼쪽 첫번째)군이 부산 소년의 집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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