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책벌레의 책돋보기-‘계몽의 변증법’]파시즘의 비판적 의식에서 출발한 고찰



“부르조아적 상품경제의 확대로 말미암아 신화의 어두운 지평이 산술적 이성의 태양으로 밝게 비춰지고, 이러한 산술적 이성의 차가운 광선아래 새로운 야만성(파시즘)의 싹이 움트고 있다.”

호르크하이머(1895∼1973)와 아도르노(1903∼1969)가 1940년대 망명지 미국에서 집필한 ‘계몽의 변증법’(1947)의 문제의식을 축약적으로 담고 있는 문구다. 나치의 집권과 연이은 망명, 새로이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에 둥지를 튼 사회과학연구소, 그리고 다시금 미국 서부로 이주해야만 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 두 거장의 당대 현실에 대한 역사철학적 분석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파시즘의 홀로코스트와 미국적 자본주의가 잉태한 현혹적인 ‘문화산업’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우리세대에게는 마치 신화처럼 여겨졌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학문적 오디세이의 귀결이 되는 이 ‘철학적 단상’은 호르크하이머가 행한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과 동일선상에 있는 논의로 이야기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이성의 지배를 일반화시켜 ‘계몽’이라고 규정한다. 계몽의 도구를 두 사람은 개념(화)이라고 규정하는데, 말하자면 이미 신화 역시 이러한 개념화의 소산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신화 세계 역시 계몽의 단계로 파악된다. 개념화에 성공한 소크라테스 이후의 이론적 인간은 자연을 객관화시키는 주체로 자신들의 위치를 격상시키고, 자연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그 댓가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바는 ‘소외’이며, 이러한 즉물화의 논리는 역으로 인간사의 제관계에서도 관철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상품 교환가치의 추상화의 한 표현 양상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주체가 아무 저항 없이 상품경제의 총체적 지배에 몸을 내맡김으로써 계몽의 정신은 ‘신화’가 되어버린다.

“애니미즘이 사물들에 영혼을 불러 넣었다면, 산업화는 영혼을 물화시켰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자면 윤리, 문화산업 그리고 학문은 이와 마찬가지로 도구적 이성의 형식주의의 발아래 놓이게 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현혹적인 연관관계에 봉사할 뿐이다.

‘계몽의 변증법’을 집필하던 시기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인류가 처한 야만적 현실에 대한 회한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 저작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에서 그들은 모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이며, 웃음은 ‘고향’으로 가는 길을 약속해 준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고향’과 ‘화해’ 사이의 은폐된 심연, 즉 ‘계몽에 대한 (새로운) 계몽’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리시대의 어느 누구도 쉽사리 이야기 할 수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서사시는 소설이 됨으로써 비로소 동화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