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영국문단의 기린아였으며 사교계의 총아였던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모더니즘 계열의 선구적인 작가들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작가일 것이다. 영국문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수많은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뿐만 아니라 당대의 윤리의식의 피해자로서 자처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오스카 와일드는 저명한 의사 아버지와 명망있는 저술가 어머니 사이에 더블린에서 태어나 더블린과 옥스퍼드에서 수학하고 1879년 이후 런던에서 댄디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일련의 초기 저작들에 대한 지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타고난 영민함과 신랄함으로 무장한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적 삶과 1884년 결혼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일상적인 삶은 1895년 이후 비극적으로 변했다. 오랜 동성애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고발당하여 2년형을 마치고 출감하였을 때 오스카 와일드는 이제 사회적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미 인간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 유명한 ‘살로메’(1891)를 불어로 출간하기도 하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프랑스로 건너가지만 그곳에서의 최후 몇 년은 영국에서의 감옥 생활보다도 더 비참했다고 전해진다. 후대의 사람들은 오스카 와일드가 만든 최고의 비극은 바로 그 자신의 생애였다고 말한다. 그의 삶은 마치 그리스 비극에 견줄만한 5막의 전통적인 비극이었고 그 비극의 가장 열렬한 관객은 바로 오스카 와일드 그 자신 뿐이었다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0)은 영국문학 전통의 고딕 소설이 지닌 낭만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도플갱어, 악마와의 계약, 마법의 주술과 같은 요소들이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극도의 심미주의와 결합하여 상징주의적이며 알고레고리적인 현대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명망있는 화가 베질 홀워드는 귀족의 후손인 미남 청년 도리언 그레이의 생생한 초상화를 그리는데, 홀워드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을 관능적 향락과 죄악으로 이끌게 된다. 도리언은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염원하고, 도리언의 육신 대신에 초상화 속의 인물상이 세월의 흐름과 타락의 흔적을 고스란히 나타내며 날로 흉악한 모습으로 변해 간다. 이점에서 ‘파우스트’와 소재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인물배치에 있어서도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헨리 워튼 경과 도리언의 관계는 메피스토와 파우스트의 관계와 같다.
뿐만 아니라 시빌 베인에 대한 도리언의 사랑과 그녀의 불행한 종말 역시 ‘파우스트’속의 그레트헨의 비극을 닮았다. 도리언은 홀워드를 살해하기 까지 하고, 종국에는 자신의 초상화를 칼로 찢고 이로 인해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줄거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개인사를 떠올리게 한다.
‘홀워드는 내가 나라고 믿고 싶은 인물이며, 워튼 경은 세상 사람들이 나라고 여기는 인물일 것이며, 내가 기꺼이 언제고 그렇게 되고 싶은 인물은 바로 도리언 일것이다’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언급한 바 있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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