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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연금수술중-영국]국가·민간 二重연금…‘불편없는 노후’보장



【런던=김문호 유상욱기자】 #1. 지난 8일 런던의 유명 뮤지컬 극장이 밀집해 있는 거리 ‘웨스트엔드(West end).’ 평일 낮 시간인데도 뮤지컬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한창 인기있는 뮤지컬 중 하나인 ‘라이언 킹(Lion king)’을 공연하고 있는 라이시엄 극장 앞에는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입장하려는 줄이 꼬리를 물었다. 몇분 뒤 700여석의 좌석이 순식간에 가득찼다. 좌석들 대부분을 50세를 넘긴 노년층이 점령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 극장 뿐이 아니다. 60곳에 달하는 이곳 뮤지컬 극장들의 단골 고객은 머리가 히끗히끗한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극장에서 만난 이스트우드(68)씨는 “일주일에 1∼2번 극장을 찾는다”면서 “뮤지컬과 각종 공연은 노년 생활을 하는 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구경거리”라고 말했다.

#2. 지난 14일 튜브(Tube)라고 불리는 런던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세계적인 테니스 대회로 이름 난 윔블던 지역. 여기서 다시 승용차로 30분을 이동하니 한 골프장이 눈에 들어왔다.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60대로 보이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골프장 풍경은 우리나라와 사뭇 달랐다. 노인들이 커플로 짝을 이뤄 치는가하면 몇몇 사람은 혼자 라운딩을 즐기기도 했다.

■글로벌 연금 제도의 자존심

영국을 흔히 ‘신사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 표현에는 중·장년층이 국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있다는 뜻도 담겨있는 듯 하다. 실제 영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터를 떠난 노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분위기를 어렵지않게 접할 수 있다.

그 뿌리는 연금이다. 영국 노인들이 알찬 노후생활을 누릴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영국의 연금제도는 크게 국가연금(state pension)과 민간연금(기업연금?corporate pension, 개인연금?private pension)으로 구성돼 있다.

국가연금은 사회보장제도의 기본틀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사회보장세를 징수해 노후퇴직자, 실업자, 노약자 등에 지급하는 연금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구조다.

다른 점은 우리 국민연금이 기금 형태로 운영되지만 영국은 사회보장세를 거둬들여 연금지급액을 매년 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연금은 다시 개인의 급여수준에 관계없이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급여에 비례해 지급하는 제2국가연금으로 나뉜다.

1948년에 도입된 기초연금제는 전국민이 대상이며 퇴직후 최저 소득을 보장한다. 연금지급공사 관계자는 “근로자의 경우 소득, 자영업자는 이윤에 연동해 국민보험료를 강제 징수하고 있다”며 “보험료를 납부한 기간에 따라 보험금을 차등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남자(여자)의 경우 16∼65세(16∼60세)의 49년(44년) 중 44년(39년) 동안 주당 최고 79.6파운드의 보험료를 낼 때 기초연금을 100% 받을 수 있다. 납부기간이 25% 밑이면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실업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을 고려해 정부는 기초연금의 수령액이 작아지지 않도록 각종 보완제도를 시행 중이다. 실업자나 60∼65세 남자에게 보험료 납부를 위한 신용을 제공하는 게 대표적이다.

또 지난 2002년 개정 도입된 추가연금(ASP)도 영국의 독특한 연금제도의 근간으로 꼽힌다.

이 제도는 재원 부족 등으로 기초연금 지급액이 낮아지는 것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으며 공무원을 포함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소득수준 파악이 어려운 자영업자는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지난 2004년 기준으로 영국의 국가연금 규모는 804억파운드(약 136조6800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7.7% 규모다.

■연금제도의 그늘

그동안 영국의 연금시스템은 국민의 노후생활보장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충실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완벽한 제도에도 빈틈이 있기 마련.

영국의 국가연금은 그야말로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비용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돼 있어 퇴직자들은 국가연금에만 의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민간연금에 대한 국민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영국정부도 여러차례 제도계혁을 통해 민간연금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노령화에 따른 막대한 연금수요를 국가 재정으로 뒷받침하는 데 점차 한계에 이르렀다. 민간연금도 그만큼 적자가 쌓이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평균 수명의 연장 및 낮은 출산율도 연금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연금지급공사는 20∼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최근 27%에서 2050년께는 48%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출산율은 최근 여성 1명당 1.7명인데 앞으로도 크게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정부 대응책 마련 고심

퇴직연령 및 연금지급 수준이 지금과 같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국가 및 민간부문의 연금 규모는 2002년 GDP의 9.9%에서 2050년경 15.1%로 커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세금이 지금보다 570억파운드 늘어야하고 현재 GDP의 2.2% 수준인 민간부문의 연금(기업 및 개인연금) 규모가 7.4%로 증가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또 퇴직연령을 남성은 현재 63.8세에서 69.8세로, 여성의 경우 61.6세에서 69.9세로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그러나 세율인상이나 연금수급 연령을 올리는 문제는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영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배경이다.

/ km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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