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24)를 만나면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만난 것 같아 왠지 즐겁다. 자폐의 일종인 발달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형진씨는 실제 정신연령이 5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형진씨는 그 또래 어린이들처럼 호기심이 많고 순수하다.
방문객이 형진씨를 위한 조그만 선물이라도 사들고 오면 그는 큰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눈을 선물꾸러미에서 떼지 못한다. 속내를 쉽게 감추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 문정동의 아파트에는 형진씨의 동생들이 참 많이 산다. 잠깐이라도 집 밖에 나가면 형진씨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귀여운 꼬마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댄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다소 어눌한 목소리로 “내 덩생(동생)”이라고 자랑한다. 형진씨는 남동생이 한명 있긴 하지만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전혀 안면이 없던 사람도 금방 친해지는 이가 바로 형진씨다. 보는 사람이 차갑게 대하지만 않으면 형진씨는 항상 어린아이 같은 밝은 얼굴을 보여준다. 어머니 박미경씨(49)와 함께 하는 외출 중에 만나는 이웃 주민들도 유명해진 형진씨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웃 어른을 만날 때마다 밝고 우렁찬 목소리로 “안녕하셔요”라고 인사하는 형진씨는 오히려 다른 또래보다 더 친밀감이 느껴진다. 이처럼 형진씨가 사회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영화 ‘말아톤’의 힘이 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 박미경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씨는 아들에게 사회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방식을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
특히 운동을 시킬 때만큼은 아들에게 박씨는 모진 엄마여야 했다. 마라톤을 통해 형진씨가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대해 박씨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형진씨의 걷는 운동은 ‘신경이 몰린 발바닥에 자극을 주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은 뒤 시작됐다.
이런 이유로 형진씨에게 운동을 시키는 박씨의 독려는 꾸준히 계속됐다. 심지어 주위 사람들이 ‘계모’라거나 ‘냉정한 엄마’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박씨는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한번은 형진씨가 고된 철인 3종 경기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운동을 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좋아하는 떡볶이를 해줬는데 입에 대지도 않고 물만 계속 마셔서 박씨가 아들에게 “힘들면 운동을 하지 말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형진씨가 얼른 선생님에게 안하겠다고 전화하라고 재촉해서 박씨는 자신이 아들의 생각을 너무 간과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발달장애를 가졌다고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단지 표현이 서툴 뿐이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고 있거든요.”
박씨는 요즘엔 형진씨에게 운동을 예전만큼 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적인 아이들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듯이 형진이도 장애를 극복하고 홀로서기 위해선 힘들어도 참아야 하는 것이라고 박씨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없을 때 형진이가 헤쳐 나가야 할 길은 더 험난할 것입니다.” 박미경씨는 언젠가는 홀로 설 아들을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강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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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사진설명=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와 어머니 박미경씨가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목련꽃이 핀 서울 문정동 집 앞을 거닐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서동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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