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조폭(조직폭력배)을 현실세계에서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꼭 낯선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영화와 TV드라마가 그들의 검은 세계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유하 감독의 네번째 장편영화 ‘비열한 거리’(제작 싸이더스FNH·배급 CJ엔터테인먼트)도 조폭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비열한 거리’는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등 액션과 웃음을 적당히 버무린 코믹액션 영화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죽기 살기로 ‘폼나는’ 액션에 목숨을 거는 ‘달콤한 인생’ 류의 액션느와르와도 조금은 다른 지점에 놓여 있는 듯하다.
지난 6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렸던 첫 시사회에서 유하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땡벌처럼 붕붕거리는 욕망의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면서 “우리의 일상적 삶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조폭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알레고리가 드러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삼류 조폭 조직의 2인자인 병두(조인성)는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제대로 된 기회 한번 잡지 못하고 떼인 돈이나 받아내는 비루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던 병두에게 조직의 뒤를 봐주던 황회장(천호진)이 눈엣가시같은 박검사를 처리해주면 평생을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해온다.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선택하기로 한 병두는 조직원들과 함께 은밀하게 박검사를 처리하지만 그의 성공을 보장할 것만 같았던 이 사건은 그의 발목을 잡고 만다.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비열한 거리’가 다른 조폭영화들과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은 삼류 조폭의 파멸 과정을 진중하게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 감독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감독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서브 플롯을 이루는 삼류 조폭 병두와 영화감독 민호(남궁민)의 이야기가 병두의 파멸 과정 속에 끼어든 것이 영화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르겠지만 그의 존재를 통해 이번 영화가 단순한 액션영화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감독은 그 자신을 매혹시킨 폭력, 혹은 조폭의 이미지를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기 위해 ‘조폭영화를 만드는 약싹빠른 영화감독’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런 반성적 시각은 액션 장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장식적인 느낌을 철저히 배제한, 그래서 화려하고 폼나기 보다는 처절하고 비루한 느낌을 주는 영화 속 액션은 감독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장면들이다. 유하 감독은 “영화 속 액션장면을 통해 조그만 이익과 욕망을 위해 싸우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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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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